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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서와 무질서-정승필 교수(가정의학과)
작성자 : 홍보팀
조회 : 8351
작성일 : 2010-04-29 08:06:35

2010.04.27일자 영남일보
세상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는 것 같다. 사계절이 순서대로 오는 것도 그렇고, 아이가 태어난 후 그 시기에 맞는 모든 과정을 겪어야 어른이 되는 것도 그렇고, 공장에서 좋은 제품이 만들어지기 위해선 순서대로 공정이 진행돼야 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만약 정해진 순서에서 벗어나게 되면 일이 뒤틀리고 불량품이 발생하며 혼란이 초래된다.
인간의 생명현상도 이와 마찬가지다. 병원에서 사용하는 용어 중 정상이 아닌 상태를 디스오더(dis-order)라고 부른다. 순서를 벗어났다는 말이다. 인체의 모든 생명 현상은 정해진 순서를 따를 때는 건강한 상태가 되지만, 순서를 벗어나게 되면 이상 현상이 초래된다.
건강한 상태에서는 모든 것이 쉽고(easy) 단순하며 걱정이 없이 편안하지만, 이상이 발생되면 불편하고(dis-easy), 복잡하며 불안해진다. 이러한 불편한 상태(dis-easy)를 질병(disease)이라고 부른다. 결국 증상이 있거나 질병이 있다는 것은 인체 내 생명 현상들이 정해진 순서에서 벗어나 있다는 말이다.
얼마 전 네이처라는 세계적인 잡지에서 암의 발생에 대한 연구를 발표한 바 있다. 줄기세포가 자라서 정상세포가 되고 난 후 순서에 따라 노화가 이루어져야 하는데, 암세포는 이러한 순서에 따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생명이 있는모든 것은 태어나고 노화되고 죽는 것이 순서인데, 이를 따르지 않고 노화와 죽음을 거부하는 것이 암세포라는 것이다.
암세포를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매우 무질서하고 순서가 없으며, 자체로 지극히 불안한 상태에 있다. 정상세포는 자신이 죽음으로서 주위 세포를 살리는 반면, 암세포는 서로 자기가 먼저 살려고 발버둥친다. 암세포는 순서를 무시하고 매우 빠르게 성장하며, 다른 세포가 먹을 영양분까지 빼앗아 먹는다. 마지막에는 그들에게 영양분을 공급해주는 주인의 생명까지 빼앗게 된다.
결국 암이 무서운 것은 순서를 따르지 않고 주위 세포를 배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도 자신을 희생하며 주위사람을 살리는 사람이 있는 반면, 순서를 거부하고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사람도 있다. 순서를 어기고 무리하게 일을 진행하다가 결국 큰 화를 당하게 되고, 본인뿐만 아니라 주위에도 큰 상처를 줄 수 있는 것이다. 항상 평온한 마음과 순서를 따르는 마음, 그리고 절제하는 생활이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는 지름길이다.
태어나고 성장하고 늙고 죽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생명현상이며, 그 누구도 이 순서를 거역할 수 없다. 이 시대를 함께 살며 타인을 배려하고 아름답게 늙어가는 것이 가장 큰 축복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영남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