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해외 탐방

독서 감상문 - <남>을 아는 <남>이 되자 - 김 한 수

작성자 : 김 한 수  

조회 : 2629 

작성일 : 2010-10-27 14:5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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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라이크 미> 책 표지 - 존 하워드 그리핀

독서 감상문 _ 책은 마음의 양식

 

          ‘남’(他人)을 아는 ‘남’(男)이 되자!

 

                     - Black like me(나 같은 흑인)를 읽고... - 

 

                                                                                               김 한 수 / 진단검사의학팀

 
흔히 ‘역지사지(易地思之)’란 말을 많이 쓰지만, 사실 ‘입장 바꿔 생각해보기’는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입장이라는 게 그렇게 쉽게 바뀌거나 공감하고 포기할 수 있는 것이라면, 이 세상에 갈등이나 분쟁은 있지도 않았으리라.

 

진정으로 ‘역지사지’를 하기 위해서는 변장이라도 하고 진짜 ‘남’(他人)이 돼 보아야 한다. 미국의 인종갈등이 한창 증폭되던 20세기 중반, 미국 저널리스트 존 하워드 그리핀은 그렇게 생각했다.

 

▇ 흑인이 된 백인 이야기

그의 목표는 직접 흑인으로 분장하고 미국 남부를 여행하면서 인종차별 실상을 살펴보는 것이었다. 1959년 11월, 루이지애나 주 뉴올리언스에 도착한 그리핀은 실제 각고의 노력 끝에 완벽하게 흑인으로 변신한 다음 한 달 반 정도 ‘흑인 체험’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는 인종차별과 관련해 충격적인 현실을 폭로했다.

 

저명한 흑인 작가 랠프 앨리슨이 쓴 유명한 소설 제목과 같이 그 당시 흑인은 ‘보이지 않는 사람’이었다. 차별을 넘어 아예 깡그리 무시당했다. 흑인으로서 그리핀이 느낀 맨 처음 감정은 무력감이었다. 흑인 남성은 백인 여성을 쳐다봐서는 안 되며, 하물며 영화포스터에 나오는 백인 여성을 쳐다봐서도 안 된다는 남부의 철두철미한 인종차별 풍조 속에서 실제로 백인인 그리핀조차도 잔뜩 긴장하고 주눅들 수밖에 없었다.


물리적으로도 적잖은 위험을 수반했다. 흑인 분장을 한 직후, 그리핀은 한밤중 낯선 거리에서 어느 백인 건달과 마주치면서 진정한 공포를 맛본다. 백인이라면 감히 시비를 걸지 못했을 철부지조차도 검은 얼굴을 보고는 서슴없이 도발해온 것이다. 또 흑인 여행객으로서 겪은 가장 큰 불편은 식사▪용변 등 기본적 욕구 해결이었다. ‘흑인 전용’ 화장실을 찾아서 수백 미터, 심지어 몇 킬로미터나 헤매야 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가장 기본적인 행위조차도 제한하고 억압하면서, 피부가 검다는 이유만으로 인간취급을 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흑인의 처참한 상황을 그들 탓이라고 손가락질 할 수 있단 말인가? 모든 문제의 근본 원인이 인종차별임을 그는 무엇보다도 강조한다.

 

▇ 진정한 ‘역지사지’는?

그리핀의 저서는 크나큰 반향과 논란을 동시에 불러일으켰으며, 미국 내 인종차별 문제를 직시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하지만 이 책이 반세기 넘게 고전이라고 대접받는 까닭은 한 시대 상황을 고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체험 자체가 매우 기발하고 흥미로우며 인간에 관한 탁월한 통찰이 곳곳에 드러났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그리핀의 이 특별한 여행은 깨달음뿐만 아니라 정신적이고 물리적인 피해까지 남겼다. 자신이 겪은 체험을 연재기사로, 또 『블랙 라이크 미』란 저서로 발표하자 성난 백인 인종차별주의자들이 협박을 가해왔다. 결국 그는 신변의 위협을 느끼고 한동안 가족과 함께 해외로 도피했으며, 나중에는 폭행을 당해 중상을 입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진정한 ‘역지사지’란 그토록 어려운 것이었을까. 지난해 말 국내 모 대학에 재직 중이던 어느 인도인 교수가 아무 이유 없이 자신을 욕한 한국인을 고발함으로써 국내의 인종차별 문제가 본격적으로 도마에 오른 적이 있었다. 만약 미국대학에서 일하는 한국인 교수가 이와 유사한 사건을 당했다면? 아마 난리가 났을 것이다.

 

바로 그런 경우에 느꼈음직한 국민적 분노와 관심이 부디 인도인 교수 사건과 같은 곳을 향해서도 쏟아졌으면 좋겠다. 비록 그리핀은 아닐지라도 우리로선 그것이야말로 최대한 ‘역지사지’하는 태도일지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