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해외 탐방

다산 생가 기행문 _ 다산을 생각하며...

작성자 : 김 한 수  

조회 : 2439 

작성일 : 2011-02-25 14: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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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정약용 생가에 세워져 있는 선생 상

다산 생가 기행문

 

‘다산’을 생각하며...

 

- 남양주에서 다산이 쓴 진솔한 편지 떠올리다 -

 

김 한 수 / 진단검사의학팀

 

유난히 추웠던 올해 초 겨울. 얼마 전 세상 시름과 번뇌를 잊고자 무작정 차를 달려 남양주의 다산 정약용 생가가 있는 한적한 곳을 다녀온 적이 있다. 생가를 보기 위해서라기보다 유유히 흐르는 북한강 자락을 끼고, 까만 하늘에 떠 있는 별을 볼 수 있어 찾고 싶었던 곳.

 

남양주 북한강변, 발자국 소리 들리는 듯...

포장마차 카페에서 천 원짜리 커피 한 잔을 사들고, 주인이 나름대로 배려한 모닥불 앞에서 70년대 통기타 가수들이 불렀던 포크송을 들으며, 혀가 데이도록 뜨거운 커피를 마신다. 침묵하는 북한강물을 총총히 비추는 희미한 별빛과 딱딱 소리를 내면서 분주하게 불똥을 튀기며 타들어 가는 모닥불에 삶을 반추해보고, 잊어야 할 것과 버려야 할 것들을 걸러 다 마신 종이컵 속에 담아 모닥불 속에 던져 버리고 나서야 다산 정약용에 생각이 미친다.

 

뒤돌아보니 한때는 길(吉)터였을 정약용 생가가 북한강만큼이나 어둠 속에 고요히 웅크리고 있었다. 그 속에서 고른 호흡으로 또박또박 글을 읽어 내려가는 소리가 들리는 듯도 하고, 일정한 리듬을 타면서 책장 넘기는 소리... 청운에의 의지를 다지며, 한 걸음 한 걸음 북한강변을 거니는 발자국 소리가 들리는 듯도 하다.

 

한때는 다산에게도 삶이란 그렇듯 만만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그가 적어도 이곳에서 꿈꿨던 세상은 두 눈 부릅뜨고 맞설 수 있는 것이었을 테고, 삶에 대한 열정 또한 꺾이면 꺾였지 휘어지지 않을 대나무와 같았으리라. 28세에 문과에 급제, 입신했던 다산은 12년 세월 동안 임금에게 인정받고, 백성에게 추앙받은 탁월한 학자요, 정치가였다.

 

희망을 꿈꾸며 절박한 외침 담은 편지들

꺾이지 않는 의지대로 세상이 맞춰 주고 있다고 보일 즈음, 극한에 이르는 좌절이 그를 향해 돌진한다. 부친 묘소를 지나 귀양 가게 한 임금의 은혜에 감읍하며 떠나온 그가 18년 세월 동안 기약 없이 유배지를 떠돌리라고 그때는 상상이나 했을까. 모든 입신양명을 뒤로 하고 중죄인이 돼 유배지로 향하는 그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일상에서 시시때때로 부딪히는 좌절 속에 허덕일 때 그보다 더한 절망 속에서도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의지를 가다듬는 다산의 절절한 편지들을 만나 보라. 사랑하는 아들들에게, 또 자신과 같이 비운에 처해 삶을 연명해 가고 있는 형제에게, 스승으로 믿고 의지하는 제자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우리는 절망에 빠지지 않기 위한 몸부림, 절망을 딛고 일어나 희망을 꿈꾸는 절박한 외침을 들을 수 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고 안개 자욱한 이른 새벽... 자기 자신을 조용히 위로하고 설득하며, 여명으로 나아가는 느리지만 힘찬 발걸음 소리. 민족 최대 학자로, 위대한 사상가로, ‘한자가 생긴 이래 가장 많은 저술을 남긴 대학자’로 후대에 칭송 받고 있는 모습보다 자식에게 잔소리 많은 평범한 아버지, 동병상련을 겪는 형을 위로하는 동생, 철없는 제자들을 준엄하게 훈시하는 스승으로서의 모습을 잔잔하게 엿볼 수 있다.

 

다산의 그 어떤 위대한 저서들보다도 인간적인 외침으로 가득 찬 편지들 속에서 스스로 삶으로부터 받은 상처를 치유해가며, 그 상처를 통해 삶을 이해하고자 했던 과정을 따라갈 수 있다.

 

속화에서 비속으로, 절망에서 여명으로 나가는 목소리

오늘날 사람과 사람 사이가 관절이 풀린 것처럼 서로에게 틈을 주지 않고, 틈이 있다 하더라도 따뜻한 사랑과 보살핌이 없는 우리에게 다산이 내뱉던 엄정한 꾸짖음은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어떤 농밀한 것을 깨우치게 하는 바가 크다.

 

또 문학과 시 정신이 속화돼 가는 이즈음, 고독을 준열하게 치고 나가 부정의 극단에서 자신을 몰아치던 그 기상은 유약에 물든 정신을 깊이 있게 자성하도록 만들 것이다.

 

속화에서 비속으로, 그리고 절망에서 여명으로 나가는 다산의 목소리는 귀를 연 자만이 들을 수 있을 것. 그리하여 희미한 별빛과 딱딱 소리를 내면서 분주히 불똥을 튀기며 타들어 가는 모닥불에게서도 치열한 삶은 뿜어져 나온다.

 

“지나침이 없는 ‘사람의 길’을 걸어야 자신을 이루고 세상을 돕는다!”

다산이 주신 가르침이 절실하게 와 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