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해외 탐방

권총 품은 영웅의 가슴에 넘친 사랑

작성자 : 홍 보 팀  

조회 : 2406 

작성일 : 2009-10-29 09:02:11 

file 안중근.jpg

권총 품은 영웅의 가슴에 넘친 사랑 - 안중근 이미지

문화산책 _ 영웅, 돌아오다


권총 품은 영웅의 가슴에 넘친 사랑


- ‘의거▪서거 100년’ 맞아 다시 태어난 위대한 장군 -


▇ 중국 하얼빈 역에 울려 퍼진 ‘대한국 만세!’

‘탕! 탕! 탕!’, ‘코레아 우라(대한국 만세)!’ 100년 전인 1909년 10월 26일 오전 9시경 중국 하얼빈 역에 울린 총성과 만세 삼창. 을사늑약을 강제 체결하고,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한 일본 정객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러시아 의장대의 군악 소리, 환영인파의 함성도 일순 멈췄다. 거사의 주인공은 바로 이듬해 3월 26일 순국한 ‘대한국인(大韓國人)’ 안중근(安重根, 1879~1910).’


▇ 당당한 기개 속에 따뜻한 사랑 품은 평화주의자

당시 서른 살 청년 안 의사는 재판장에서 “나는 사람을 죽인 살인자가 아니다. 대한국 의병 참모 중장 자격으로 일본군과 전쟁을 벌이다가 적장을 포살하고 잡힌 포로이니 만국공판에 회부하라”고 당당히 외쳤다. 방청 중이던 러시아, 중국, 일본인은 물론 재판부까지 그 당당한 기개에 감탄했다.


안 의사가 높이 평가되는 이유는 한국 강점의 원흉 이토를 저격한 의사(義士)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훌륭한 정치사상가일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 평화주의자였다. 그는 옥중에서 그 유명한 ‘동양평화론’을 제창했다. 일본이 조선의 국권을 되돌려주고 만주와 중국에 대한 야욕을 버려, 한중일 3국이 각각 독립을 유지하는 가운데 협력해야만 동양평화가 실현될 수 있다는 이론이다. 요즘 활발히 논의되고 있는 동북아시아 공동체론의 모태이고, 유럽연합보다 100년이나 앞선 제안이다. 그가 인도의 간디, 중국의 쑨원, 마오쩌둥과 함께 근대 아시아가 배출한 4대 정치사상가로 거론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 일본인에게도 존경받은 그의 인품

이토록 고매한 인품을 지닌 그를 접했던 일본인들은 존경을 표하는 감정을 아끼지 않았다. 임시정부 2대 대통령이었던 박은식(朴殷植)은 전기 ‘안중근’에서 “일인(日人)들도 그 의(義)를 흠모하여 필적을 구하려는 자가 많았다”고 쓰고 있다.


뤼순감옥 소장 구리하라 사다기치(栗原貞吉), 뤼순감옥 담당 간수이자 헌병대원 지바 토시치(千葉十七) 등이 그를 무척 흠모했다. 일화 하나를 소개하면 ‘국가안위노심초사(國家安危勞心焦思)’란 휘호를 받은 하급 검찰관 야스오카 세이시로(安岡靜四郞)는 후일 며느리에게 “안중근은 깊은 교양의 소유자”란 증언을 남겨 며느리가 ‘초대 총리대신을 죽인 암살자를 그렇게 평가해도 될까’라며 깜짝 놀랐다고 전한다.


▇ 조국 땅에 꼭 돌아오시길...

안 의사 의거와 서거 100주년을 맞아 이를 기념하는 대대적인 사업이 국가차원에서 전개되고 있다. 공연계는 ‘명성황후’의 후속편 격으로 안 의사를 그린 대형 뮤지컬 ‘영웅’을 10월 26일 개봉해 연말까지 무대에 올린다. 그가 마지막 남긴 유언처럼 이번에 그의 유해가 반드시 조국 대한민국으로 봉환되길 두 손 모아 기원해본다.


▇ 도 움 : 이 은 일 / 의학도서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