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고전으로 보는 세상] 신념 지키려 하나뿐인 생명 내놓은 장엄한 모습

작성자 : 홍보협력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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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1-09-01 10:23:34 

신념 지키려 하나뿐인 생명 내놓은 장엄한 모습

플라톤의 『소크라테스의 변론』

 

기원전 399년 소크라테스는 국가가 인정하는 신들을 믿지 않고 새로운 신을 도입했으며, 젊은이를 타락시켰다는 죄목으로 사형 선고를 받았다. 그의 재판과정을 소상하게 담은 책이 플라톤의 『소크라테스의 변론』 (이하 ‘변론’)이다. 이 작품은 박종현, 천병희 교수를 비롯하여 여러 학자들에 의해 국역되었다. 이 책은 분량이 작아 플라톤의 다른 작품들과 함께 편집되어 출판되고 있다.


난생 처음으로 법정에 선 소크라테스는 변호인의 도움 없이 스스로를 변호하고 있다. 고소인들이 제시한 죄목에 대해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려 노력했다. 그의 변론을 들은 500명의 재판관들은 전문적인 법률가가 아니라 일당을 받고 재판 하는 평범한 시민들이었다. 그들은 ‘지혜를 가졌다’고 자처하는 소피스트들과 ‘지혜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소크라테스를 구별하는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 
재판관들은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의 패배, 스파르타인들이 선임한 30인 참주들의 만행, 구교육과 신교육의 갈등의 와중에서 소크라테스가 제기하는 인생의 근본 적인 문제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변론’은 플라톤의 전체 저작 중 소크라테스의 삶을 가장 잘 보여주는 전기적인 작품이다. 독자들은 이 작품을 통해 소크라테스 일생의 일부를 알게 된다. 그는 철학과 철학적 삶이 무엇인지를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그는 자신의 신념과 행동을 완벽하게 일치시키려 했다. 

오늘날 인문학의 위기가 초래된 것은 여러 원인과 이유가 있지만 주된 것은 인문학을 하는 사람들이 보여준 위선, 변절 그리고 탐욕 이라고 생각된다. 칠순에 이른 노 철학자가 자신의 신념을 수호하기 위해 하나 뿐인 생명을 내놓은 장엄한 모습은 인문정신의 표상이라고 할 수 있다. 스파르타 30인 참주제를 몰아내고 수립된 민주정치체제에서 억울하게 고소당한 소크라테스는 시민 법정에 출석하여 당당하게 자신을 변론하였다. 그의 변론은 재판관들을 설득하는데 실패하였다. 
그의 변론은 변명도 자비를 구하는 내용이 아니었다. 그는 법정을 자신의 철학사상을 전개하는 장소로 활용하였다. 재판은 민주적 절차에 의해 진행되었으며 아테네 법률에 의해 사형이 집행되었다. 소크라테스의 이런 행동을 보고 일부 학자들은 그를 ‘사법적 자살’이라는 표현 을 사용하였다. 민주주의 정체는 다수결을 존중하는 제도이지만 다수의 의견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소수의 의견을 존중하여 보호하려 한다. 
소수의 의견을 존중해야 다수가 자기 과신과 오류에 빠지지 않게 된다. 재판관들은 통념을 중시한 나머지 위대한 철학자들을 처형하는 과오를 범했다. 플라톤은 ‘변론’의 마지막 부분 즉 최후 진술에서 소크라테스가 재판관들과 아테네 시민들에게 아들들의 장래를 당부하는 말을 전해주고 있다. 

소크라테스 는 자신의 아들 셋이 장성하여 탁월성(virtue)보다 재물을 비롯하여 세속적인 것을 더 좋아하거든 자신이 시민들에게 늘 하듯이 이번에는 아들 셋을 계속해서 괴롭혀 달라고 말했다. 여기서 ‘괴롭히다’는 말은 등에처럼 인생을 음미하면서 살아가도록 요청하라는 것을 의미한다. 아들이 장성하여 타계한 아버지의 말을 전해 들었을 때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궁금하다. ‘변론’의 마지막은 이렇게 끝맺는다. “저는 죽으러, 여러분은 살기 위해 이제 떠날 때가 되었습니다. 어느 것이 더 좋은지는 신만이 알 것입니다.” 소크라테스 는 겸손하게 신만이 안다고 말했지만 2천 40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이렇게 말 해야 한다. “어느 것이 더 좋은지 이제는 우리 모두가 안다.”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소크라테스를 사랑한다면 그의 일생이 보여준 지행합일(知行合一) 의 정신을 우리가 몸소 보여줘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