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해외 탐방

[서양 고전으로 보는 세상] 전쟁의 주역들 그들은 왜 비극을 택했는가?

작성자 : 홍보협력팀  

조회 : 290 

작성일 : 2021-08-02 14:07:18 

file 서양 고전으로 보는 세상-03.jpg

전쟁의 주역들 그들은 왜 비극을 택했는가?

 

 

글 · 진단검사의학팀 최창수 

 



 고대 그리스인들은 도시국가들 간의 싸움을 ‘내란’으로, 타 민족들과의 싸움은 ‘전쟁’으로 명명하였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스파르타와 아테네의 내란으로 시작되었지만 수많은 동맹국들과 페르시아와 시케리아와 같은 이민족들이 참전함으로써 실로 거대한 전쟁이 되었다. 


 기원전 431년부터 404년까지 27년간 계속된 이 전쟁은 아테네와 스파르타뿐만 아니라 그리스 전 도시국가들의 국력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왔으며 이전에 누렸던 전성기를 다시는 맞이하지 못했다. 비슷한 국력을 가진 나라가 전쟁을 할 경우 그 폐해와 참상이 얼마나 큰 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 전쟁을 다룬 책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쓴 투키디데스(Thucydides, c. 460-c. 395 BC)는 아테네의 장군으로 전쟁에 참전하였다. 아테네의 속주인 암피폴리스를 수호하지 못해 문책을 받은 그는 추방자의 신세로 전락하여 스파르타를 비롯해 주변 국가들을 여행하였다. 그는 자신을 추방한 조국에 대해 저항함이 없이 추방기간 20년 동안 추방자의 처지를 오히려 잘 활용하였다. 그는 추방자의 신분이었기 때문에 적국인 스파르타와 그의 동맹국들을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었으며 자신이 본 것들을 기록하였다. 그는 냉철하고 객관적인 관점에서 양 진영의 전쟁 수행 정책을 비교하면서 단순한 기록물이 아니라 후세의 사람들에게 역사적 교훈을 주기 위해 이 책을 저술하였다고 말했다. 

 

 8권으로 된 ‘전쟁사’는 저자의 주관이 들어 있기는 하지만 과학적인 역사서로 평가받는다. 저자는 어느 한 편에 서 있지 않고 객관적인 시각으로 전쟁의 전 과정을 살펴보려 한다. 이 책에는 여러 역사적 평가와 주장이 제기되지만 가장 인상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코린트 사절단의 한 사람이 아테네인들과 스파르타인들의 성격을 묘사하는 장면이다. 그는 아테네 시민의 성격에 대해서는 호의적으로 기술하고, 스파르타인들에 대해서는 ‘소극적이고, 조심성이 많고, 보수적이고, 우둔하고, 느린’사람들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바로 이런 사람들이 전쟁에서 승리하였다. 신중하고 침착한 기질이 전쟁과 같은 대사에서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보여준다. 

 

 이 저서에서 또 하나의 특징은 전쟁 주역들의 연설문이다. 투키디데스는 이들의 연설을 직접 듣기도 하고 참석할 수 없을때는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의 전언을 통해 재구성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연설문들 가운데서도 제2권에 나오는 페리클레스(Pericles)의 장송연설이 압권이다. 스파르타의 선제공격으로 많은 아테네의 병사들과 시민들이 전사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통치자들의 신분으로 추도연설은 하는 것은 힘겨운 일이었다. 그는 유가족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문제보다는 조국에 대해 자부심과 애국심을 고취하는 일이 우선적인 것으로 생각했다.  

 

 오늘의 아테네를 있게 한 조상들의 숭고한 정신을 예찬하며 아테네는 목숨을 바쳐 지킬만한 가치가 있는 나라라고 하였다. 자유,평등, 정의가 살아 있는 도시로 모든 사람에게 개방되어 있는 나라라는 것이다. 연설문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말은 아테네가 ‘헬라스의 학교’라는 표현이다. 학교란 어느 나라나 가장 정선한 교육적 환경으로 구성되어 있다. 도시국가 전체가 학교라는 표현 속
에는 어딜 가나 비교육적인 환경이 없다는 의미이다.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교사는 학생들을 교육하고 어른들은 유해환경을 만들
어 학생들을 유혹한다.  

 

 연설문 끝에는 유가족을 위로하는 말이 등장한다. 자녀들은 국비로 양육과 교육을 하겠다고 다짐하였다. 유가족을 위하는 연설
에서 아기를 낳을 수 있는 나의의 미망인들에게 재혼을 권유하는 장면이 나온다. 모든 것을 금전으로 해결하려는 시도와는 다른
정책을 제시하고 있다. 젊은 미망인들이 어떤 반응을 보여주었는지 궁금하다.

 

페리클레스는 탁월한 정치가였지만 친구이자 스파르타 왕인 아키다모스와 외교적 노력을 통해 전쟁을 방지했어야 했다. 그는
아테네의 국력을 과신한 나머지 이런 노력을 소홀히 하였다. 그는 20여 년을 집권했지만 자신에 버금가는 정치지도자들을
양성하지 못했다. 그는 전쟁 발발 2년 뒤인 429년 병명을 모르는 전염병으로 인해 사망하였다. 그의 후계자들인 민중선동가
이자 호전론자인 클레온(Cleon)은 여러 차례 평화조약의 기회를 거부하였고, 민중선동가 알키비아데스(Alcibiades)는 연설을
통해 민회가 시켈리아 원정을 지지하도록 하였다. 대등한 군사력을 가진 상황에서 병력의 반을 빼돌려 이오니아 이주민들이
살고 있는 시켈리아로 원정가게 한 것은 큰 실수였다. 원정군이 거의 전멸함으로써 아테네의 국운은 기울어졌고 결국 404년
스파르타에 항복하여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 8권 중 제7권이 가장 뛰어난 글로서 독자들은 아테네와 동맹국들의 비극적 사태
를 보며 망연자실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손수건을 준비하라는 권고를 받는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는 역사학 분야에서 불후의 고전으로 평가받고 있다. 세계의 지도자들이 이 책을 읽고 국제정치의 지혜
를 얻으려 하였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기원전 5세기의 그리스에 대한 역사적 지식뿐만 아니라 개인, 가족, 공동체의 이상적
인 삶에 대한 시사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이 책은 고대인들의 치열한 삶의 현장을 체험하도록 해준다. 이 책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하는 개인적인 질문에서부터 작은 나라에 속하는 우리나라가 강대국들 사이에서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는가?’하는 문
제에 이르기까지
지혜의 정수를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