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보기
때밀이의 꿈 - 제9회 대구시 자원봉사활동 체험사례 공모 최우수상 수상작
작성자 : 금 창 애
조회 : 3282
작성일 : 2011-01-26 11:31:24
때밀이의 꿈
- 나눌수록 더 많이 얻게 되고 행복해지는 봉사 -
금 창 애 / 입원팀
매월 첫째 주 일요일 아침이면 피곤함도 뒤로한 채 새로운 일을 위해 달려가는 곳이 있다. 그곳은 바로 시립희망원. 처음에는 선배언니들 손에 이끌려 마지못해 시작했는데, 벌써 10여 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 목욕봉사... 최고 때밀이가 소원
한 아이를 키우는 엄마이자 가정주부이며, 직장여성으로서 하루 일과는 참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돌아간다. 그러나 이러한 내 일상생활에서 마음을 따뜻하게 사로잡는 게 있다면 바로 그분들과의 만남이다. 어렵고 힘든 생활을 기쁨으로 채우면서 활력을 주고, 슬프고 괴로울 때 마음 깊이 ‘위로자’가 돼주는 그분들이 있기에 나는 늘 행복하고 긍정적인 마음을 갖고 열심히 살 수 있다.
우리 봉사는 기도로 시작되며, 남녀 30여 명의 자원봉사자가 매달 정기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봉사에는 목욕봉사, 미용봉사, 나들이봉사, 의료봉사 등이 있다. 여러 종류의 봉사들 중 나는 목욕봉사를 하고 있다. 이날만큼은 어김없이 때밀이로 변신한다. 어느 순간부터 이곳에서만은 최고의 때밀이가 되기를 소원하고 꿈꿔왔다.
처음 희망원을 찾아 몸과 마음이 모두 불편하신 그분들을 보았을 때 무척 놀라고 두려웠다. 지금까지 만나온 분들은 정상적인 보통사람들이었고, 우리는 늘 ‘오늘 하루 어떻게 하면 즐겁고 행복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하고 살아왔던 게 사실이었다. 이제껏 해온 내 생각은 그분들을 만나는 순간 사치라고 여겨졌다.
▇ 첫 목욕봉사 당시 두려움
그분들께 첫 목욕을 시켰던 그날을 잊을 수 없다. 두려운 마음을 억누르며 때수건을 손에 끼고, 그분들 몸에 물을 끼얹으면서 머리에 샴푸를 해주고 때를 미는 게 생각처럼 제대로 되지 않아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지금은 나를 볼 때마다 예쁜 미소를 보내며 방긋방긋 웃는 은경이! 내게 있어 은경이는 첫 손님이었다. 당시 제일 나이 어렸던 그녀는 낮선 사람들의 손놀림이 무척 두렵고 무서웠었나 보다.
한참 목욕을 시키고 있는데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내 팔목을 꽉 잡고는 놔주지 않았다. 아무리 애원을 하고 얘기를 해도 은경이는 그대로였다. 결국 여러 사람들이 달려들어 은경이가 잡은 손을 펴서 겨우 팔을 빼낼 수 있었다. 내 팔목은 훈장처럼 시퍼렇게 멍이 들었고, 한동안 팔목을 제대로 사용할 수 없어 고생을 해야만 했다.
그런 은경이가 이제는 나를 보면 방긋방긋 웃으며 좋아한다. 어쩌다 다른 봉사자들이 함께 들어와서 목욕을 시키면 불안한 마음에 내 팔목을 다시금 꽉 잡는다. 그러면 나는 말한다. “은경아, 언니야 팔목이 쪼금 아프거든.” 그러면 그녀는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힘주어 잡은 손길을 느슨하게 풀어 준다. 그런 은경이가 예뻐서 나는 그녀가 제일 좋아하는 동요를 불러준다.
▇ 관심과 애정에 열린 말문
처음 그날처럼 늘 얼굴을 찡그리고 소리를 지르면서 울고 있는 분이 있다. 그냥 침대에 누워 있을 때도 항상 큰소리로 우는 분. 무엇이 그분을 그렇게 울게 했는지 사연은 알 수 없지만, 목욕시킬 때는 더 큰소리로 울기 때문에 늘 불안하고 마음이 쓰인다. 그래도 우리와 만나는 횟수가 더해갈수록 어느 순간 울음은 멈춰지고, 얼굴에는 해바라기처럼 밝은 미소가 피어난다.
지금은 너무 많이 웃어 농담으로 그만 입을 다물라고 할 정도다. 처음에는 말을 전혀 못 했는데, 이제는 목욕을 시키고 로션을 바르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힌 다음 침대로 모시면 “좋~다, 좋~다”고 연거푸 크게 말씀하신다. 최근에는 목욕 후 “사~랑해”하고 큰소리로 외쳐서 목욕봉사자들 마음이 얼마나 흐뭇하고 행복해졌는지 모른다.
그리고 항상 “얄궂어~라”고 하시는 할머니! 뭐가 그리 얄궂은지 우리를 보면 그렇게 말씀하신다. 아마도 본인 몸을 남에게 맡기는 게 쑥스럽고 미안했나 보다. 그러면 우리는 모두 “괘안씸~더”하고 답변을 한다. 목욕을 시키면서 그분들 한 분 한 분께 별명을 지어준다. 예쁜이 할머니, 멋쟁이 할머니, 얄궂어라 할머니... 내가 좋아하는 예쁜이 할머니는 언제나 예쁜 얼굴로 잔잔한 미소를 보내주신다.
▇ 아프지만 오히려 우리를 배려하는 그들
예쁜이 할머니를 끌어안으며 잘 지내셨느냐고 안부를 전한다. 그러면 고개만 끄떡이며 반가운 미소를 보내신다. 봉사하는 몇 년 동안 한 말씀도 안 하셔서 나는 그분이 벙어리인 줄 알았다. 그러던 그분이 어느 날부터인가 “할머니,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라고 물으면 “박 ◯◯”라고 큰 목소리로 대답하신다. 아마도 우리가 표현했던 관심과 애정이 할머니의 닫힌 입을 열게 한 거 같다.
그리고 ◯◯할머니는 본인이 간직하고 있는 소중한 물건을 잠시도 손에서 떼어놓으려 하지 않는다. 목욕을 하는 동안 수건에 꽁꽁 싸여있는 물건이 조금이라도 몸에서 떨어져 있으면 불안해서인지 달라고 소리치신다. 우리가 보기에는 그렇게 중요한 물건이 아닌 것 같은데도 그분은 마치 큰 보물인양 소중하게 다룬다. 목욕시키는 내내 우리는 그 물건을 할머니 눈앞에 들고서 확인을 시킨다. 목욕이 끝나면 옷 입기도 전에 물건부터 먼저 찾으신다. 아마도 거기에는 할머니의 가장 소중한 추억이 담겨있나 보다.
몸집이 제일 크고 뚱뚱한 효숙 씨는 몸 전체를 움직이지 못한다. 그녀를 목욕시키려면 6명 정도 봉사자들이 필요하다. 목욕 후에는 봉사자 모두가 지쳐 진이 다 빠진다. 하지만 지금 그녀는 잘 움직여지지 않는 다리지만, 약간씩 들어주려고 노력하고, 등도 살짝 움직여주고, 불편한 팔도 조금씩 들어줘 쉽게 목욕시킬 수 있도록 배려를 해준다. 땀방울이 이마에 송글송글 맺혀도 힘들지 않고, 왠지 가슴이 뿌듯해지고 기분이 좋아진다. 아마도 배려하려는 그녀 마음에서 전해지는 행복감 때문이 아닐까.
▇ 사랑 나눔 봉사, 내 삶 일부
때로는 수술 부위나 아픈 부위 상처 등으로 인해 목욕시키는 일이 곤혹스러울 때가 많았다. 특히 유방암에 걸려 가슴 부위 상처가 심한 분, 욕창 등으로 등이 다 헐어 치료를 받고 있는 분, 소변 줄을 꼽고 있는 분, 피부가 가렵다고 피가 날 정도로 긁어 상처가 난 분, 투석으로 팔목이 퉁퉁 부은 분... 몸을 씻겨드리면서 그분들의 마음에 난 상처도 함께 깨끗하게 씻겨지기를 소원한다.
많은 분들이 대변조절이 잘 안 돼서 어린 아이처럼 늘 기저귀를 차고 있는 경우가 많다. 목욕 중에도 대변이 줄줄 나오기도 하고, 기저귀에 한 움큼씩 대변을 본 상태이거나 목욕하려고 대기하다가 볼일을 보기도 한다. 과거 그 냄새 때문에 토하기도 하고, 얼굴을 찡그리기도 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를수록 좋은 향기로 느껴지고, 볼일을 보고 나면 그분들이 얼마나 시원하고 속이 편안해질까 안심이 된다. “괜찮아요.”
▇ 당신이 있어 너무 행복합니다
함께 봉사하는 언니 한 분은 “나는 대변 냄새를 제일 좋아한다”며 기분 좋게 웃는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나도 선배언니처럼 ‘때밀이 고수(高手)’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바로 그게 내 꿈이다. 그분들께 편안함과 웃음을 줄 수 있는 때밀이가 되는 것. 깨끗하게 목욕을 한 그분들 모습에서 우리는 천사를 본다. 사람이 아름답다는 것, 그리고 예쁘다는 것. 이보다 더한 아름다움이 있을까?
때로는 너무 힘들어 가는 발걸음을 멈추고 싶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왠지 나를 기다리고 있을 그분들 생각을 하면 잠시 게을러지고 싶은 마음을 접게 된다. “다음 달에 또 봐요.” 그것은 그들뿐만 아니라 나 자신과의 약속이기도 한 것이다. 봉사를 끝내고 돌아서는 가슴 한편에는 뭔지 모를 울렁임이 일면서 눈물이 핑 돈다. 다음 달에 또 만날 수 있을까. 그렇게 약속해놓고 다시 갔을 때 못 만나게 된 분들이 몇이었던가. 언제나 ‘좀 더 잘할 걸...’하고 후회를 하면서 난 또 그분들과 그리고 나 자신과 약속을 한다.
큰소리로 외쳐본다. “당신이 있어 너무 행복합니다.” 가진 시간과 마음, 사랑을 이들과 함께 나누는 것! 그렇게 나눔으로써 내가 더 많이 얻게 되고, 더 많이 행복해진다는 걸 봉사를 통해 비로소 깨닫게 됐다.
※ 제9회 대구광역시 자원봉사활동 체험사례 공모 최우수상 수상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