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봉사 후기 - 첫 걸 음 - 곽경아

작성자 : 곽 경 아  

조회 : 2908 

작성일 : 2011-10-28 10: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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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여름 의료봉사활동 중인 영남대 의학전문대학원생 곽경아 씨

의료봉사 후기

 

첫 걸 음

 

- 4박5일간의 아름다운 여정, 소중한 여름추억 -

 

곽 경 아 / 의학전문대학원 3학년

 

바깥 날씨가 제법 쌀쌀하다. 올해 달력도 두 장밖에 남지 않았다. 한 해를 마감해야 할 시기가 벌써 온 것이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다가 여름방학 기간에 의학도로서 다녀온 의료봉사활동이 떠올랐다. 평생 잊혀지지 않을 소중한 추억으로서.

 

지난 7월 22일부터 4박5일간 서울시어린이병원과 충남 당진군 노인요양원에서 열린 ‘삼성메디슨, 청년의사 자원봉사 체험캠프’에 참여했다. 올해로 5회째를 맞은 이 행사에 우리 학교 학생들은 매년 참가를 해왔다. 올해도 국내외 30개 의전원-의대 50명의 예비의사들이 모여 봉사에 대한 의미를 저마다 가슴에 새길 수 있었다.

 

“개와 사람이 교통사고를 당했다. 상처의 종류도, 깊이도, 통증도 똑같다. 과연 사람과 개는 같은 크기의 아픔을 느낄까?” 본과 2학년 감염류마티스내과 수업시간에 교수님이 학생들에게 던진 질문이다.

 

똑 같은 상처임에도 사람은 훨씬 더 큰 고통을 짊어진다. 사람에게는 ‘내일’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현재 느끼는 고통보다 내일 더 큰 고통을 느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죽음에 직면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큰 슬픔을 남길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내일에 대한 두려움은 사람을 사람답게 존재하게 하는 원동력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고통의 강도를 배가시키기도 한다.

 

바로 이 부분. 내일에 대한 두려움을 어루만질 수 있는 의사가 되고자 의학전문대학원에 입학한 지 어느덧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러나 본과 1~2학년은 하루하루가 시험과 과락에 대한 압박감으로 가득 채워졌고, 어느새 스스로의 다짐은 빛이 바래 없어졌다. 어떤 모습을 갖고 살아가야겠다는 목표를 잃어버린 상황에서 하루하루를 그저 버텨내고 있다는 느낌으로 살고 있었다.

 

PK실습을 4개월간 돌고나서 찾아온 4주의 자유 시간을 헛되이 보내고 싶진 않았다. 몸과 마음의 아픔을 치료할 수 있는 자격을 조금이나마 갖춘 사람으로 스스로를 일으켜 세우고 싶었다. 그 중 하나가 봉사활동이었다. 본과 1~2학년에 기회를 놓쳐 참가하지 못했던 봉사 체험캠프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것은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서울시어린이병원에서 봉사 캠프의 첫 일정을 시작하기 전까지만 해도 사실 확신이 없었다. 열의도, 열정도, 확신도 가지지 못한 채 두려움으로 캠프의 첫 날을 맞았다. 서울시어린이병원에서 배정받은 활동은 중증장애 아동들이 머무는 병동에서 아이들을 만나는 일이었다. 병동에 있는 아이들은 좋고 싫다는 원초적인 감정을 드러내거나 그럴 수조차 없는 상태였다.

 

아이들을 목욕시키고, 옷을 갈아입히고, 밥을 먹이다가 가영이라는 아이 침대 맡에 ‘가영이 손톱 깎지 마세요. 아빠가 깎아주세요’라고 붙은 메모를 발견했다. 아빠가 사랑하는 딸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손톱을 깎아주는 일밖에는 없었던 것이다. 가영이가 먹고 자고 씻는 일을 돕는 것은 우리 몫이었다. 가영이 아버님의 딸에 대한 거대한 사랑을 위탁받은 사람들. 그런 사람으로 성장하기 위해 우리가 지금 이곳에 와 있다는 생각을 하며 어린이병원에서의 추억을 그리고 배움을 가슴 속에 담았다.

 

당진노인전문요양원에서는 목욕봉사 때 ‘예쁜 것이 시원하게도 목욕 시켜준다’며 좋아하셨던 김옥수 할머니가 기억에 남는다. 할머니는 목욕봉사 때도, 의료봉사 때 휠체어를 밀어드릴 때도 고맙다는 말을 반복하셨다. 대학을 다니고 있는 손녀가 공부하느라 바빠 오질 못한다고, 다음에 커서 훌륭하게 될 거라는 예쁜 손녀 은진이 자랑을 참 많이 하셨다.

 

봉사 마지막 날, 할머니들이 머무르시는 방을 청소하며 인사를 드리는데, 김옥수 할머님께서 내 손을 꼭 잡고 눈물을 흘리면서 말씀하셨다. 곽경아라는 이름을 죽을 때까지 기억하겠다고, 너무 고맙다고, 공부 열심히 해서 훌륭한 의사선생님이 되라고... 순간 가슴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올라왔다. 그렇게 할머니 앞에 무릎 꿇고 한참을 울었다. ‘할머니, 정말 고마워할 사람은 저에요. 할머니께서 제 손을 잡아주셔서, 제게 고맙다고, 잊지 않겠다고 해주셔서 저는 오랜만에 숨을 쉰 것 같아요.’

 

서울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곽경아라는 의대생이, 그리고 곽경아라는 한 사람이 가득 차 있음을 느낀다. 나 자신을 치유하고 돌아올 거라는 작은 마음으로 시작한 이 시간의 끝에서 내가 얻은 것은 이미 그 작은 마음을 채우고 넘쳐, 앞으로 의사로서 내가 안고 살아가야 할, 그리고 동시에 나를 품어줄 가치라는 큰 선물이었다.

 

사진제공 _ 청년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