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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의료봉사 후기 - 나마스테, 카트만두 - 고 재 남 정신건강의학과 간호사

작성자 : 고 재 남  

조회 : 2306 

작성일 : 2012-01-31 12:3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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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트만두 오지서 현지주민을 진료 중인 이관호 병원장

해외의료봉사 후기

 

나마스테! 카트만두

 

‘2011년 네팔 의료봉사’를 다녀와서...

 

고 재 남 l 정신건강의학과

 

네팔로 떠나기까지 거의 1년이란 기간 동안 치밀한 계획이 필요했다. 가족에게 7박9일간의 여행이 있을 거라는 암시와 함께 머릿속에 입력을 시키기 시작했다. 어느덧 12월. 출발 일주일 전까지 주위 모든 환경이 순탄하도록 내버려두질 않았다.

 

노환을 앓고 계신 어머니는 더 편찮아 지신 듯했다. 가장 믿었던 남편은 꼭 가야겠냐고, 아이 셋을 어떻게 돌보냐고... 기타 등등. 가방을 다 싸서 보란 듯이 전시해두었건만, 사방엔 적들(?)로 가득 찼다. 그러나 절대 포기할 순 없었다. 이렇게 나의 네팔 의료봉사는 시작됐다.

 

네팔은 어떤 나라?

서남아시아 인도와 중국(티베트)과 접경한 내륙국. 면적은 147.181km²로 한반도의 3분의 2 크기다. 고도는 해발 70m부터 8천848m까지 다양하다. 2008년 기준 총 인구 약 2천952만 명 중 320만 명 정도가 수도 카트만두에 살고 있다. 네팔어와 10여 개 소수 부족어가 사용된다. 2010년 IMF 기준 1인당 GDP는 562$로 세계 최빈국 가운데 하나다.

 

국민은 인도 아리안족과 몽골족으로 대별된다. 카트만두 지역은 이와 같은 두 민족의 정신과 문화가 만나는 곳이다. 세계에서 유일한 힌두왕국이며, 또 부처가 탄생한 곳(룸비니)이기도 하다. 따라서 다수의 힌두교와 불교가 혼합돼 있고, 힌두사원과 불교사원이 곳곳에 널려 있다. 화폐 단위로는 루피(1US$은 67루피 정도)를 쓴다.

 

12월 10일 아침 6시 기상

불교신행회 회원 모두 이른 아침부터 부지런을 떨었다. 마지막 점검을 마치고, 카트만두 빈민촌의 어느 고등학교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간단한 환영식순에 이어 진료실(교실)로 이동했다. 말이 교실이지 실상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열악했다. 형광등이 없어 해가 지면 진료가 불가능할 정도로 어두컴컴했다.

 

오전 9시 진료를 개시했다. 오후 5시까지 8백여 명의 환자가 줄을 이었다. 5시 이후에는 전기사정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진료를 다음날로 미룰 수밖에 없는 현실이었다. 내일 우리를 필요로 하는 더 많은 현지주민들을 위해 “파이팅”을 외치며 첫날 진료를 마감했다.

 

끈끈한 가족애

엄마, 아빠 도움 없이 어린 형제자매들이 줄 지어 찾아왔다. 9살짜리 언니가 젖먹이 동생을 옆구리에 착 감은 듯한 자세로 야무지게 진료를 보기도 했다. 낮(18~20도)과 밤(2~4도) 일교차로 만연해 있는 감기를 오래 방치한 탓인지 진물이 양 귀로 흘러내리는 중이염 환자가 정말 많았다. ‘원래 이렇게 살았다’는 태연한 얼굴이었다.

 

사계절 옷을 다 껴입은 것 같았다. 가슴에 청진기를 대볼라 치면 내복과 반팔, 긴팔, 전통의상, 점퍼 등 많은 옷을 벗은 후에야 앙상한 몸이 드러났다. 영양과 위생상태가 나빠 제 나이보다 체구가 훨씬 작아 보였으나, 밝고 맑은 표정만큼은 세상에서 제일 행복해 보였다. 눈만 마주쳐도 “나마스테(‘안녕하세요’란 의미의 네팔어 인사말)”라며 즐거워했다.

 

진료 2일째, 9시 진료준비 완료

운동장에는 서로 먼저 진료를 보겠다고 모인 사람들로 시끌벅적했다. 아이들 울음소리도 들렸다. 참고로 네팔은 한국보다 3시간 15분 느리다. 보통 고등학교는 오전 10시 등교해 오후 3시 30분까지 수업이 진행된다고 한다. 주식이 밥과 카레인 까닭인지 가까이 다가오는 사람들한테서 카레향이 진하게 배여 나왔다.

 

모두 일사분란하게 각자 맡은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 임무를 수행했다. 창문이 없는 교실은 맞바람이 쳐서 한기마저 들 정도로 추웠다. 잠시 잠깐씩 햇볕이 드는 운동장에 나와 햇볕을 쬐어가며 한기를 다스려야 했다. 점심식사 후 밖은 더 소란스러워졌다. 인원이 더욱 몰려 아수라장이 됐다. 한 어머니에 딸린 아이가 서넛...

 

올망졸망 어린이 눈망울은 이 세상 무엇보다 예쁘고 사랑스러웠지만, 여린 몸은 안쓰럽기 짝이 없었다. 초코파이 하나에 기뻐하는 아이들 모습! 학용품 선물을 하나라도 더 받고 싶어 애타하는 눈동자... 시간이 흘러 8백 명 가까이 넘어서자 약품은 모두 동이 나 더 이상 진료 보기를 중단해야 했다.

 

오후 5시 진료 End. 많이 아쉬웠다. 늦게 찾아오는 환자도 있어 안타까운 마음뿐이었다. 그곳 학교 교장선생님과 선생님, 그리고 영남의대 동문인 라제스 씨는 몇 번이고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해왔다. “나마스테! 나마스테!” 준비해간 선물을 학생에게 전달하는 증정식을 끝으로 의료봉사 일정은 전부 마무리됐다.

 

12월 12일 포카라로 이동

또 하나 잊을 수 없는 추억은 히말라야를 직접 눈으로 본 것이었다. 네팔은 ‘세계의 지붕’을 가진 나라... 13일 새벽 4시 사랑곳을 향해 버스를 타고 캄캄한 거리를 달렸다. 도착해서 돌계단을 걸어 구릉족이 간간이 살고 있는 집들을 지나 한 시간을 오르니 드디어 꿈처럼 히말라야 산맥이 위용을 드러냈다.

 

먼저 스님 말씀에 따라 고(故) 박영석 대원이 실종됐다는 안나푸르나 남봉을 향해 축원을 드렸다. 여명이 밝아오는 장엄한 안나푸르나! 이 세상 무엇과도 견주지 못할 숨겨진 환상 같은 천 년 설산! 황금빛으로 빛나는 히말라야 에베레스트를 바라보며 할 말을 잃었다.

 

말로만 듣던 세계 꼭대기, 이 아래 수많은 지구인 중 나! 조금 힘들어도 조금 화나도 당분간 뭐든지 웃을 수 있다. 거대한 지구 신비를 만났으니까. 히말라야 안나푸르나를 본 이상 나는 분명 더 커지고 달라질 것이다. 본인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이 사랑스럽고 감사하게 느껴졌다.

 

레썸피리리와 에필로그

그날 저녁 신비로움, 기쁨, 희열에 들뜬 회원들과 함께 나눈 티베트식 전통 저녁식사 퉁바! 퉁바 하나로도 너무나 행복하고 멋진 밤이었다. 이관호 원장님이 현지인한테 배워 가르쳐주신 ‘레썸피리리(Resham pheereo ree)’란 네팔민요는 어느 곳에서도 대환영이었다. 어쩌나, 지금도 무심코 입에서 오르내리는 레썸피리리를.

 

인천공항에 도착했을 때 네온사인 불빛에 감격해 찔끔 눈물까지 쏟을 뻔했다. 가로등 없이 밤이 두려운 네팔에 비해 하늘에서 내려다본 도시 불빛이 너무 아름다워서... 그리고 정겨워서였다. 끝으로 35명 전원, 무사히 돌아와 웃는 얼굴로 추억을 꽃피울 수 있어 정말 좋았다. 배려해준 주위 모든 분들께 고마움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