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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동행] 연차별 간호사 교육 후기 (RICU 조현정 간호사)
작성자 : 홍보협력팀
조회 : 702
작성일 : 2021-01-14 09:57:19
잔인한 계절이 지나면 우리의 일상은 돌아올까요
글: 호흡기중환자실 조현정 간호사
코로나19로 자유로운 외출을 하지 못하고, 마스크와 함께 하는 삶은 이제 우리의 일상이 되었다.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확진자로 인해 대구·경북 지역이 몸살을 앓은 잔인했던 지난 봄, 나는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사랑스러운 딸아이와 생이별을 하고 복직과 동시에 동료 간호사들과 함께 합숙생활을 시작했다.
2월 말, 그리고 3월 TV 속 대구는 혼돈 그 자체였다. 부서 단체채팅방의 상황도 심각하기 그지 없었다. 내가 복귀한 4월의 호흡기중환자실은 혼돈 속 열악한 환경 안에서 답답한 방호복과 N95 마스크, 페이스 쉴드로 무장한 채 가림벽을 사이에 두고 무전기로 의사소통 하며 쉬는 시간도 전혀 없이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모두가 경험해 보지 못한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철저한 규칙을 만들고 역할을 분담하여 단기간에 자리를 잡은 모습이었다. 호흡기중환자실 구성원들이 한 달 반 동안 다 차려 놓은 밥상에 그저 발 하나 들이면서 나는 자랑스러웠던 나의 직업을 그토록 원망하고 복직을 두려워했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뒤늦은 깨달음이기도 했다.
그렇게도 잔인했던 2020년의 봄이 지나가고, 마스크를 벗지 못했던 힘겨운 여름도 지나갔다. 그리고 돌아온 가을, 어쩌면 예전의 일상을 되찾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도 잠시나마 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의 일상은 지난 봄과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아직도 우리는 숨막히는 마스크와 한 몸이 되어 있고, 외출은 여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이런 극한 상황과 더불어 3교대와 육아에 찌들어 있는 나의 답답한 마음을 누가 알기라도 한 걸까? 맑고 쾌청한 가을날 연차별 워크샵에 참가하게 되었다. 바쁜 일상에 쉼표를 찍고 출발하자마자 마치 잔치에 초대받은 것처럼 설레기 시작했다.
구름한 점 없는 깨끗한 하늘을 눈에 담으며 우리가 도착한 곳은 칠곡 숲체원. 그리 멀지도 않은 곳에 이렇게 좋은 곳이 있었던 걸 그동안 왜 몰랐을까.
오전 시간은 박민정 강사님과 함께하는 아로마 향기치유 시간으로 채워졌다. 여러 가지 아로마 오일을 시향 하고 마음에 드는 오일을 골라 직접 블랜딩하여 나만의 아로마 향수가 완성되었다. 내가 고른 아로마 오일은 시트러스 블리스와 세레니티, 그리고 엘리베이션 1방울. 생각보다 향이 아주 좋아서 만족스러웠다. 좋아하는 아로마향으로 서로의 성격을 유추해보기도 하고, 지금 나에게 필요한 감정을 치유하는 법을 알려준 강의는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점심 식사 후에는 식곤증을 이겨내기 딱 좋은 숲속 걷기가 시작 되었다. 참새 선생님의 안내에 따라 간단한 몸풀기 후 숲속 걷기가 시작되었다. 걸으면서 마주하는 식물에 관한 재미있는 설명과 함께 아름다운 경치에 모두가 매료되어 여기저기서 카메라 셔터음이 들려왔다.
우리 모두는 자연과 어울리는 별칭을 가졌고, 민망했지만 짧게나마 미래의 내가 현재의 나에게 편지를 쓰는 시간을 가졌다. 나의 별칭은 아이의 태명이었던 도토리.
그동안 열심히 살아 왔노라 스스로를 토닥이는 짧은 편지는 랜덤으로 다른 선생님들께 나누어졌고, 나무 메달을 직접 꾸며 편지의 주인에게 걸어 주었다.(도토리가 만든 메달을 받으신 은행나무님 잘 지내고 계시지요? ^^)
이번 워크샵의 하이라이트라고 감히 말할 수 있는 명상의 시간. 햇볕이 들지 않는 숲속이라 꽤 추운 날씨였지만 색색의 고운 천을 펄럭이며 사랑을 받기도, 또 주기도 하는 시간을 가졌다. 둥글게 둘러 누워서 맑은 하늘을 보고 잠시 생각의 시간을 갖는 찰나, 삼남매 육아에 매일 전쟁 같은 나날을 보내고 있는 옆자리 선생님은 추위에 아랑곳 않고 잠에 드시기도 했다. “선생님~ 여기서 주무시면 입 돌아가요!!”
방역수칙을 준수하면서 진행된 시간인 만큼 상쾌한 숲의 공기마저도 마스크를 거쳐서 느껴야만 했지만, 시끄럽고 복잡한 도심을 벗어나 오직 자연의 소리만 존재하는 이곳에서 좋은 사람들과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참 즐겁고 감사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