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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MC 이야기] 마음의 상처는 무엇으로 회복할 수 있을까?- 구본훈 교수(정신건강의학과)
작성자 : 홍보협력팀
조회 : 1421
작성일 : 2018-01-10 13:34:39
마음의 상처는 무엇으로 회복할 수 있을까?
- 인사이드아웃 -
구본훈 교수 (정신건강의학과)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로서 환자를 진료하다 보면 여러 가지 힘든 감정들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어려워하는 환자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 나도 늘 이런 환자들을 보면서 ‘어떻게 하면 환자들의 힘든 감정을 조금이라도 덜어 줄 수 있을까?’ 고민한다. 또한, 꼭 환자가 아니더라도 주위의 지인들이 힘든 감정을 호소하는 경우도 있고, 나 자신의 힘든 감정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고민되기도 한다. 이런 고민이 나의 직업적 고민일 수도 있지만,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이 느끼는 것이기도 하다. "인사이드아웃"은 비록 만화영화이지만, 나와 같은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에게는 참 흥미로운 애니메이션이다. 만화영화이기 때문에 실사 영화에서는 표현하기 어려운 다양한 상상이 펼쳐지고, 인간의 마음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아주 재미있게 묘사하고 있다.
인간의 감정을 기쁨(joy), 슬픔(sadness), 두려움(fear), 혐오(disgust), 분노(anger)로 나누어 이러한 감정을 의인화해서 재미있는 캐릭터로 만들고, 각기 감정의 역할과 감정 간의 관계도 잘 묘사되어 있다. 인간이 겪는 경험이 어떻게 해서 우리의 마음속에서 단기기억이 되고, 이것이 더 많은 비슷한 경험들을 통해 강화되어 장기기억으로 가게 되는지, 또한 현재 순간에 떠오르는 생각과 연관된 작업기억(working memory)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도 잘 묘사되어 있다. 특히, 우리가 어떤 경험을 하게 되면 그것이 있는 그대로 똑같이 저장되는 것이 아니라, 그 경험을 한 사람의 감정이 색칠되어 기억하게 된다는 점도 매우 인상적이다. 또한, 인간이 흔히 의식적으로 떠올리기 싫은 부정적인 감정들은 더욱 깊은 무의식에 저장되어 공포스러운 모습으로 숨겨져 있는 것을 묘사한 부분, 꿈을 만들어 내는 꿈 공장, 추상적 사고과정이 어떻게 변형되는지에 대한 묘사, 그리고 사람이 어떤 경험을 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경험 내용이 점점 잊혀져 사라지거나 다시 강화되어 그 사람의 인격이 되어가는 과정에 대한 묘사들도 잘 나타나 있다.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인 여학생이 어린이에서 반항적인 사춘기 소녀가 되어가면서 변하는 감정도 잘 묘사되어 있고, 인간이 점점 성숙함에 따라 감정을 조절하는 장치도 처음에는 단순하게 한두 가지밖에 없었지만, 점점 더 복잡해지는 과정도 잘 묘사되어 있다. 그래서 어렸을 때는 어떤 경험을 하게 되면 이에 따른 감정이 단순하게 한 가지 감정으로 색칠되어 기억에 저장되지만, 인격이 성숙해짐에 따라 한 가지 경험에도 여러 가지 감정이 같이 색칠될 수 있다는 것도 잘 묘사되어 있다. 또한, 주인공 소녀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빙봉이라는 환상 속 대상을 통해 어릴 때 우리 마음속에 있는 부모나 중요한 인물에 대한 소망과 감정도 잘 묘사하고 있다.
뜬금없이 애니메이션을 소개하는 이유는 평소에 감정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이 애니메이션은 힘든 감정을 다루는 여러 방법 중 한 가지 방법이 잘 표현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빙봉이 슬퍼할 때와 슬픔이 부정적인 이야기를 쏟아내며 무기력하게 있을 때, 기쁨이 "생각을 바꿔보라, 활동을 해보라, 즐거운 일을 상상해보라"라고 하는 등 여러 가지 긍정적인 방법을 동원해 보지만 쉽게 해결되지 않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다가 기쁨 대신 슬픔이 나와서 빙봉이 슬퍼하는 것을 들어주고 그 감정을 공유하니까 빙봉의 슬픔이 사라진다. 그래서 주인공 여학생이 슬퍼할 때도 기쁨이 직접 나서지 않고 슬픔이 나서 주인공의 슬픔을 해결하기도 한다. 즉, 우울한 감정이 심하지 않을 때는 여러 가지 긍정적인 방법이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깊은 슬픔은 긍정적인 기쁨으로 해결이 되지 않고 같이 슬퍼하면서 공감해야지만 극복할 수 있다는 점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외래에서 환자를 볼 때도, 주위의 지인이 힘들어할 때도, 사춘기 아이가 반항하거나 거부적일 때도, 또한 자신의 감정으로 힘들 때도, 때에 따라서는 조언을 해주기보다는 그 감정에 그냥 같이 있어 주는 것이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느끼는 순간이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는 과학 기술이 발전하고 점점 더 편리한 세상이 되어 가고 있지만, 높은 자살률과 실업률 등 삶의 질은 더욱 낮아지고 있고 성적 및 결과 지향 주의 사회에서 많은 사람이 좌절하고 힘들어하고 있다. 이로 인해 분노조절장애라고 이름 부르는 ‘묻지마 범죄’도 발생하고, 백종원 쉐프의 인기만큼 입으로 먹는 음식에 집착하기도 하고, YOLO(You Live Only Once)라는 참기보다는 좀더 욕구에 충실한 사회적 경향이 나타나기도 한다. 이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힘든 세상에 대한 사회 체계나 정치적인 해결방법은 모르겠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이 어려운 세상에서 서로 감정을 나눌 수 있는 유토피아적인 세상이 오면 좋겠다는 상상을 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