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그 삶의 현장

작성자 : 황종성  

조회 : 4995 

작성일 : 2003-04-30 10:20:38 

영대병원에는 약 200여명의 전공의(레지던트)와 60여명의 수련의(인턴)가 있다.대부분의 전공의와 수련의는 일차적으로 환자를 진료하며 하루하루 바쁜 생활을 보내고 있다.
환자를 진료하며 밤을 꼴딱 새기도 하고 하루종일 수술실에 있을 때도 있다. 정신적, 육체적 스트레스가 이만 저만이 아니다. 나도 벌써 이런 생활이 3년이나 지나갔다.
돌이켜 보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잘 모르겠지만 하루하루 항상 바쁘고 꽤 힘들었던 것 같다.
앞으로의 의사 생활에 있어서 3년이란 그리 긴 시간은 아니겠지만 전공을 막 시작하는 과정에서는 매우 중요한 시기라 생각한다. 그래서 평소에 내가 전공의로서 느끼고 있던 이야기를 해 보고 싶다.
처음 의사면허증을 받고 기대감과 두려움으로병원생활을시작할때가생각난다. 모든 인턴 선생님들이 그러하겠지만 항상 환자를 위하여 환자 입장에서 모든 것을 생각하고 훌륭한 인술을 베풀어야겠다고 다짐하고 병원 생활을 접하여야 했을 때를 말이다.
그런데, 이게 웬걸... 너무나 순진한 생각이었을까? 현실은 너무나도 달랐다. 응급실에서 환자를 진료할 때면 넘쳐나는 환자들로 인해 정신없이 뛰어다녀도 환자와 보호자들은 빨리 안 봐 준다고 난리를 피우고 어떤 보호자는 술을 먹고 와서 행패를 부려도 아무도 말리는 사람도 없고 보호자와 항상 말다툼하고... 응급실에서는 경중을 가려서 중환을 먼저 해결하는 것이 상식이고 도리다. 그렇지만 자기를 먼저 안 봐 준다고 난리 법석을 피우는 소리... 진료비가 비싸다고 비아냥 거리는보호자. 식사 시간에는 사진을 찍을 수도 없고, 시도 때도 없이 연락와서 오더를 내리는 레지던트, 처음 의사 생활을 하는 마당에는 이런 현실들은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항상 인술을 베풀어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무사히 별 탈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에 만족하여야 했으니 말이다(하기야 인턴 신분에서는 진료보다는 일을 빨리 무리없이 해 내는 것이 환자를 위하는 일이다). 그리고 병실 생활은 어떠한가? 하루 종일 샘플(검사를 위해 채혈하는 것)하러 다니고 필름, 차트를 찾아다니는 것이 주 일이고 쉴 새 없이 울리는 호출벨 소리에 짜증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요즘은 샘플러도 생기고 PACS 시스템도 도입되어 한결 나아졌지만 지금 인턴 선생님들도 힘 들기는 마찬가지 일것이다) 하지만 조금만 지나면 이런 생활이 너무도 익숙해져서 별다른 반성없이 인턴과정을 수료하고 레지던트 과정을 거친다.
전공의란 신분은 참으로 모호해서 병원에서 가장 가까이서 환자를 진료하는 의사, 의학을 교수님들께 배우는 피교육자인 동시에 병원에 고용되어 환자를 보며 일을 하는 피고용자등 여러 가지 복합적인 위치이다.
환자를 진료함에 있어 전공의는 주치의로서 처방을 내고 진료를 하지만 그에 따르는 책임을 져야 한다. 어떤 약을 쓸건지 검사는 어떤 검사를 해야 할지 수술은 어떻게 할지 등을 말이다. 물론 교수님들이 어떻게 치료할지 회진 때 말씀해 주시지만 다시한번 환자나 보호자에게 설명을 하고 동의를 구해야 한다. 나는 외과의사이기 때문에 주로 수술에 대한 설명을 한다. 수술 후의 경과와 생길 수 있는 합병증, 향후 치료 방향 등을 말이다.
근데 이런 설명을 하는데 깐깐한 환자나 보호자를 만나면 하루 종일 시달린다. 물론 환자나 보호자들 입장에서는 하루 종일 들어도 모자라는 것이 환자 상태와 향후 경과에 대한 설명임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나름대로(?) 자세히 친절하게 설명을 하고 하지만 대화가 안 되는 경우도 있다.
처음에는 한 두 번 더 자세히 설명해 주고하지만 계속 그러면 나도 모르게 짜증이 난다. 쌓인 일과 해결해야 하는 일도 산더미인데 할 일부터 걱정이 앞선다. 그래서 환자 및 보호자들과 다투기도 한다. 물론 환자 상태가 나빠지면 다른 일을 제쳐두고 환자를 옆에서 진료한다. 환자란 언제든지 나빠질 수가 있는 상태이다. 특히 오랜 시간의 수술과 여러 가지 지병이 있는
경우가 그렇다. 요즘 보호자들은 인터넷과 책자 등을 통해 병에 대해서 많은 공부를 하기 때문에 설명하기에 쉬운 점도 있고 어려운 점도 많다.
이런 생활이 힘들지만 보람있을 때도 많다. 환자가 좋아져서 퇴원할 때 따뜻한 감사의 한마디가 말이다. 진심으로 고맙게 생각되는 말 한마디와 눈빛은 힘든 생활을 지속시키는 힘이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대화하는 것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낀다. 그러나 그것은 구조와 시스템의 문제지 일부러 그러는 전공의 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요즘은 진행된 암 환자가 많아치료가 효과적이지 못한 환자도 많다. 치료는 하지만 치유 가능성이 없는 경우기때문이다. 이런 환자들을 볼 때는 의사로서의 자괴감과 안타까운 심정이 이루 말할 수 없다. 진심으로 따뜻한 말 한마디가 필요한 경우이다.
환자들 중에서도 자기가 완치되지 못하고 통증과 다른 여러 가지 힘든 상황이지만 항상 밝은 모습으로 지내는 환자들을 간혹 본다. 어떤 면에서는 고맙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다.
이런 환자들에게서 사람으로서 배우는 점도 많다. 더 열심히 살아야 겠다는 생각이 드니 말이다. 의사가 모든 병을 치유할수는 없다. 못 고치는 병도 많다.
오늘도 환자를 보면서 여러 가지 많은 생각을 해 본다.
건강의 소중함과 삶의 의미를....

(황종성 / 외과 레지던트 3년차, 총의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