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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사가 쓰는 병동일지 13
작성자 : 정지현
조회 : 5146
작성일 : 2003-03-22 10:04:37
얼마 전 근무 중에 한 남자 레지던트에게 느닷없이“아기엄마 아니에요?”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나는 깜짝 놀라서 고개를 절래 흔들었지만 그 사람은 긴가민가 하는 눈치다. 그 날 근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내심 속이 상했다.
뭐 때문에 나이 25살에“아줌마”로 보여졌을까?
맨날 바르는 립스틱? 아님 아줌마 같아 보이는 펑퍼짐한 몸매? 이 생각 저 생각 결국 고민 끝에 굽슬굽슬 파마머리가 날 아줌마로 보이게 한 원인이라 생각하고 다음날 미장원에 가서 파마를 쫙쫙 풀었다.
가급적 어려 보이고 참신하게 보이려고 학생처럼 단발 생머리에 분홍색 립스틱을 바르고 출근해서 그 남자 의사를 만났을 때“아직도 내가 애기엄마로 보여요?”라고 물었다.
속으로 은근히“농담이었어요. 정말 어려보이네요”를 기대하고 물은 말이었는데, “어! 정말 아줌마 아니었어요?”하며 진지한 표정으로 다시 한번 묻는 것이었다. 이 상황을 지켜본 선배 간호사가“이 간호사 결혼도 안 했는데... 그런 실수하면 어떻해요”
나무라듯 다그쳐서 미안하단 말을 받아냈지만 그 충격은 쉽게 가시질 않았고 그 후로 병원에서 마주쳐도 그 남자 의사가 곱게 보이지만은 않았다.
내가 편하게 보여서일까? 너무 평범한 얼굴 이어서일까?
1년 전 내가 소아과병동에서 근무할 때 날‘병원엄마’라고 부르면서 따르던 아이가 있었는데 한 선배 간호사가 그 아이를 두고“이 간호사는 아들도 있어요”라고 말을 해서 진짜 아기엄마로 생각했다는 말을 며칠 후에 듣게 되었다.
그 말을 듣고나니“저 아기엄마 아니예요”라고 얼굴 빨개지며 발끈해서 외쳐댔던 내 모습이 얼마나 우습던지...
입원하면 꼭 내게 와서“엄마 나왔어”라고 말하던 그 아이.
오랜 투병 생활과 힘든 상황 끝에 엄마와 헤어져야 하는 상황이어서인지 퍽이나 나를 따랐다.
불쑥불쑥 던지는 말로 어른들을 곤혹스럽게 하던 아이. 머리속에는 항상 다음엔 무슨 장난을 할까 궁리할 것 같던 장난끼가 졸졸 흐르던 아이.
면역 억제제 때문에 눈썹은 까맣고 유난히 볼이 통통하게 귀여웠던 아이.
“엄마 엄마”하고 따라다니면 장단맞춰“내 아들”하고 엉덩이를 톡톡 두드려주기도 했다.
엄마라고 불리면서도 근무 중에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이라곤 열날 때 짜증부리는 아이에게 억지로 약 먹여주고, 싫다는 아이 옷 갈아 입혀주고, 가끔씩“사랑해”하며 안아주고 뽀뽀해 준 것 밖에 없는데... 그것도 업무가 바쁠 땐 신경 써주지도 못했는데...
그리고 가끔씩 성가셔하기도 했을 것이다.
유난히 잠 못 이루고 이리저리 뒤척이던 날 밤에 그 아이는 우리 곁을 떠났다.
잘해주지도 못했는데... 생각하면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이 선생님은 우리 엄마예요”라며 다른 보호자에게 자랑스럽게 말하던 그 아이가 오늘은 참 많이 생각나고 보고싶어진다.
내가 아줌마라고요?
정지현 / 52병동 간호사
나는 깜짝 놀라서 고개를 절래 흔들었지만 그 사람은 긴가민가 하는 눈치다. 그 날 근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내심 속이 상했다.
뭐 때문에 나이 25살에“아줌마”로 보여졌을까?
맨날 바르는 립스틱? 아님 아줌마 같아 보이는 펑퍼짐한 몸매? 이 생각 저 생각 결국 고민 끝에 굽슬굽슬 파마머리가 날 아줌마로 보이게 한 원인이라 생각하고 다음날 미장원에 가서 파마를 쫙쫙 풀었다.
가급적 어려 보이고 참신하게 보이려고 학생처럼 단발 생머리에 분홍색 립스틱을 바르고 출근해서 그 남자 의사를 만났을 때“아직도 내가 애기엄마로 보여요?”라고 물었다.
속으로 은근히“농담이었어요. 정말 어려보이네요”를 기대하고 물은 말이었는데, “어! 정말 아줌마 아니었어요?”하며 진지한 표정으로 다시 한번 묻는 것이었다. 이 상황을 지켜본 선배 간호사가“이 간호사 결혼도 안 했는데... 그런 실수하면 어떻해요”
나무라듯 다그쳐서 미안하단 말을 받아냈지만 그 충격은 쉽게 가시질 않았고 그 후로 병원에서 마주쳐도 그 남자 의사가 곱게 보이지만은 않았다.
내가 편하게 보여서일까? 너무 평범한 얼굴 이어서일까?
1년 전 내가 소아과병동에서 근무할 때 날‘병원엄마’라고 부르면서 따르던 아이가 있었는데 한 선배 간호사가 그 아이를 두고“이 간호사는 아들도 있어요”라고 말을 해서 진짜 아기엄마로 생각했다는 말을 며칠 후에 듣게 되었다.
그 말을 듣고나니“저 아기엄마 아니예요”라고 얼굴 빨개지며 발끈해서 외쳐댔던 내 모습이 얼마나 우습던지...
입원하면 꼭 내게 와서“엄마 나왔어”라고 말하던 그 아이.
오랜 투병 생활과 힘든 상황 끝에 엄마와 헤어져야 하는 상황이어서인지 퍽이나 나를 따랐다.
불쑥불쑥 던지는 말로 어른들을 곤혹스럽게 하던 아이. 머리속에는 항상 다음엔 무슨 장난을 할까 궁리할 것 같던 장난끼가 졸졸 흐르던 아이.
면역 억제제 때문에 눈썹은 까맣고 유난히 볼이 통통하게 귀여웠던 아이.
“엄마 엄마”하고 따라다니면 장단맞춰“내 아들”하고 엉덩이를 톡톡 두드려주기도 했다.
엄마라고 불리면서도 근무 중에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이라곤 열날 때 짜증부리는 아이에게 억지로 약 먹여주고, 싫다는 아이 옷 갈아 입혀주고, 가끔씩“사랑해”하며 안아주고 뽀뽀해 준 것 밖에 없는데... 그것도 업무가 바쁠 땐 신경 써주지도 못했는데...
그리고 가끔씩 성가셔하기도 했을 것이다.
유난히 잠 못 이루고 이리저리 뒤척이던 날 밤에 그 아이는 우리 곁을 떠났다.
잘해주지도 못했는데... 생각하면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이 선생님은 우리 엄마예요”라며 다른 보호자에게 자랑스럽게 말하던 그 아이가 오늘은 참 많이 생각나고 보고싶어진다.
내가 아줌마라고요?
정지현 / 52병동 간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