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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사가 쓰는 병동일지 12
작성자 : 최영은
조회 : 4634
작성일 : 2003-03-22 09:54:51
■ 임종 체험을 하고 나서
오늘은 죽음 체험을 마친 후 병실입원 체험을 하는 날이다.
우리 모두는 흰색 상하의 옷을 입고 지하 3층 장례식장 입구에서 긴장된 마음을 누르며 잠시 대기하고 있었다.
많은 생각들이 교차했다. 과연 나는 살아오면서 몇 번이나 죽음에 대해 생각했고, 얼마나 진지하게 받아들였을까... 아마도 없었던 것 같다. 스물셋이라는 숫자가 죽음이라는 단어를 수용하기에는 너무 젊고 나와는 무관한 일이라며 의식적으로 피해왔던 것 같다.
이렇게죽음의의미를제대로이해도못하면서나는생의끝인죽음앞으로서서히어느저승사자에이끌려가게되었다.
검은색 옷을 아래 위로 입고 말없이 우리를 이끌고 가는 저 사람은 누구일까? 나는 분명 살아있는데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지하에서부터 계단과 연결되는 복도 문들이 모두 닫히고 불빛이라고는 없는 어두운 계단 길을 올라오면서 죽음으로의 길이 너무 멀다고 생각했다. 캄캄한 3층 복도에 이르니 너무 숨이차서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이러한 사실조차 아직 나는 살아있다는 산자로서의 여유가 아닐까. 만약 내가 지금 지나온 이 길들이 임종을 앞둔 환자들의 생과 사를 연결하는 마지막 통로였다면 나의 이 한 걸음 한 걸음들은 이렇게 쉽게 떨어졌을까. 아무도 모르는 길,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깜깜한 길을 정처없이 혼자 걷게 된다면 얼마나 외롭고 무서울까. 3층 회의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낯 설지 않은 곡소리와 짙은 향 내음이 마음을 엄습했다.
회의실 입구에는 두 개의 촛불이 어둠을 밀어내고 그사이에 관 하나가 어울리지 않게 놓여 있었다. 우리가 들고 있는 촛불이 흔들리듯 저승사자의 망자들을 위한 노래에 가슴이 흔들리고 있었다. 모차르트의 레퀴엠이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의 영혼을 죽음으로 이끌고 있었다. 들고있던 촛불이 하나씩 꺼지면서 우리는 죽음을 준비했다. 관 속에 들어가기 전 심호흡을 하며 생각을 정리했다. 임종을 앞둔 사람들은 대부분, 가족이나 살면서 미웠고 힘들었던 사람들이 기억에서 떠오른다는데 웬일인지 나는 초등학교 때 돌아가신할머니 모습이 어른거렸다.
관 속에 꼿꼿이 누워계시던 할머니의 모습은 평안해 보였었다. 그 이후로 어린 나의 마음에 죽음은 편안한 것으로 기억되어서 죽음이 심각하게 생각되지 않았었다. 그러나 내가 막상 죽음 앞에 아니 내가 누울 낯선 관 앞에 서 있으려니 무섭기 시작했다. 입술을 꽉 물고 신에게 나를 지켜달라며 기도드린 후 후들거리는 두 다리로 관 속에 누웠다. 그러나 눕는 순간 피가 머리로 솟구치는 느낌이 들더니 갑자기 의외의 편안함이 다가왔다. 닫힌 관 뚜껑을 못질하는 소리가 들리고 틈 사이고 매캐한 향 내음이 정신을 흔들었다. 아, 내가 살아있기에 냄새를 맡을 수 있는거겠지 순간 살아있음이 고마웠다. 이렇게 살아서 생각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감사했다.
이 체험을 하면서 어릴 때 그렇게 평안한 모습으로 돌아가신 할머니가 조금 이해되는 것도 같았다. 할머니는 왜 좀 더살고 싶다는 생각을 안하셨겠는가 할머니도 죽음은 역시 두려우셨을 것이다. 그러나 할머니는 돌아가셔도 자신을 기억해 줄 수 있는 가족이 있다는 든든함에 아마도 죽음을 편안하게 맞이하실 수 있었던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존재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에 두려움을 느낄 것이다. 나는 이 가상의 죽음을 통해 앞으로 공기를 마실 수 있고 혹은 숨 쉴 수 있다는 그 당연한 사실만으로도 겸허하게 감사할 수 있으리라. 나와 함께 사는 사람들에게 쉽게 잊혀지지 않
는 사람이 되어 언젠가의 나의 죽음을 당당히 맞이하리라.
최영은 / 신규 간호사
오늘은 죽음 체험을 마친 후 병실입원 체험을 하는 날이다.
우리 모두는 흰색 상하의 옷을 입고 지하 3층 장례식장 입구에서 긴장된 마음을 누르며 잠시 대기하고 있었다.
많은 생각들이 교차했다. 과연 나는 살아오면서 몇 번이나 죽음에 대해 생각했고, 얼마나 진지하게 받아들였을까... 아마도 없었던 것 같다. 스물셋이라는 숫자가 죽음이라는 단어를 수용하기에는 너무 젊고 나와는 무관한 일이라며 의식적으로 피해왔던 것 같다.
이렇게죽음의의미를제대로이해도못하면서나는생의끝인죽음앞으로서서히어느저승사자에이끌려가게되었다.
검은색 옷을 아래 위로 입고 말없이 우리를 이끌고 가는 저 사람은 누구일까? 나는 분명 살아있는데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지하에서부터 계단과 연결되는 복도 문들이 모두 닫히고 불빛이라고는 없는 어두운 계단 길을 올라오면서 죽음으로의 길이 너무 멀다고 생각했다. 캄캄한 3층 복도에 이르니 너무 숨이차서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이러한 사실조차 아직 나는 살아있다는 산자로서의 여유가 아닐까. 만약 내가 지금 지나온 이 길들이 임종을 앞둔 환자들의 생과 사를 연결하는 마지막 통로였다면 나의 이 한 걸음 한 걸음들은 이렇게 쉽게 떨어졌을까. 아무도 모르는 길,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깜깜한 길을 정처없이 혼자 걷게 된다면 얼마나 외롭고 무서울까. 3층 회의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낯 설지 않은 곡소리와 짙은 향 내음이 마음을 엄습했다.
회의실 입구에는 두 개의 촛불이 어둠을 밀어내고 그사이에 관 하나가 어울리지 않게 놓여 있었다. 우리가 들고 있는 촛불이 흔들리듯 저승사자의 망자들을 위한 노래에 가슴이 흔들리고 있었다. 모차르트의 레퀴엠이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의 영혼을 죽음으로 이끌고 있었다. 들고있던 촛불이 하나씩 꺼지면서 우리는 죽음을 준비했다. 관 속에 들어가기 전 심호흡을 하며 생각을 정리했다. 임종을 앞둔 사람들은 대부분, 가족이나 살면서 미웠고 힘들었던 사람들이 기억에서 떠오른다는데 웬일인지 나는 초등학교 때 돌아가신할머니 모습이 어른거렸다.
관 속에 꼿꼿이 누워계시던 할머니의 모습은 평안해 보였었다. 그 이후로 어린 나의 마음에 죽음은 편안한 것으로 기억되어서 죽음이 심각하게 생각되지 않았었다. 그러나 내가 막상 죽음 앞에 아니 내가 누울 낯선 관 앞에 서 있으려니 무섭기 시작했다. 입술을 꽉 물고 신에게 나를 지켜달라며 기도드린 후 후들거리는 두 다리로 관 속에 누웠다. 그러나 눕는 순간 피가 머리로 솟구치는 느낌이 들더니 갑자기 의외의 편안함이 다가왔다. 닫힌 관 뚜껑을 못질하는 소리가 들리고 틈 사이고 매캐한 향 내음이 정신을 흔들었다. 아, 내가 살아있기에 냄새를 맡을 수 있는거겠지 순간 살아있음이 고마웠다. 이렇게 살아서 생각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감사했다.
이 체험을 하면서 어릴 때 그렇게 평안한 모습으로 돌아가신 할머니가 조금 이해되는 것도 같았다. 할머니는 왜 좀 더살고 싶다는 생각을 안하셨겠는가 할머니도 죽음은 역시 두려우셨을 것이다. 그러나 할머니는 돌아가셔도 자신을 기억해 줄 수 있는 가족이 있다는 든든함에 아마도 죽음을 편안하게 맞이하실 수 있었던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존재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에 두려움을 느낄 것이다. 나는 이 가상의 죽음을 통해 앞으로 공기를 마실 수 있고 혹은 숨 쉴 수 있다는 그 당연한 사실만으로도 겸허하게 감사할 수 있으리라. 나와 함께 사는 사람들에게 쉽게 잊혀지지 않
는 사람이 되어 언젠가의 나의 죽음을 당당히 맞이하리라.
최영은 / 신규 간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