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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사가 쓰는 병동일지10
작성자 : 김인옥
조회 : 5103
작성일 : 2002-05-02 12:01:23
★겨울을 보내면서★
2월의 마지막 토요일 하루일을 마쳤다.
토요일 오전은 항상 그렇듯이 전쟁을 치르는 기분으로 시작한다.
짧은 업무시간에 비해 처리해야 할 일의 분량은 하나도 줄어들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부산하게 서너 시간을 뛰어 다니다 보면 어느사이 시계는 정오를 넘어가고 있다.
일주일을 마감하면서 자리에 앉으면 온몸에서 무언가가 다 빠져나간 느낌이다.
이 한 주일도 아무일 없이 무사히 넘긴 안도감 때문일까.
정리된 기분으로 문을 나서고 싶은 기대 때문에 사람들 틈에 뒤섞여 바쁘게 퇴근하는 것 보다 가끔씩 난 한시간 정도씩 늦게 내려가는 것을 좋아한다.
늘 북적대는 병원 현관 로비의 분위기에 비해 모두 다 빠져나간 텅빈 분위기가 훨씬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준다. 아주 가끔씩 오후시간이 여유로운 날은 텅빈 의자에 한참을 앉아 있다가 가기도 한다.
아직도 병원 안의 기운은 겨울 같은 썰렁함이 베어있는데 반해 한 겹 창문 밖은 많이 따뜻해 진 것 같다.
햇살도, 기운도, 사람들의 느낌도.... 봄이 오고 있음인가.
해마다 봄을 앞에 두고는 새로운 감동이 내게 찾아오길 기대하는 버릇이 있지만 그중 가장 큰 기대는 습관처럼 맞이하는 아침에 내가 잡아주고 오는 수많은 아픈 손들에 있다.
내손에 마법이 있어 그들의 손을 잡아주기만 해도 병상을 훌훌털고 일어나는 기적같은 일들-항암요법을 받느라 매우 힘든 꼬마 환아에게는 병마를 훌훌 털고 일어설 수 있는 기적을,
마비된 다리땜에 휠체어에 의지해 몸을 지탱하는 이들에게는 두 다리로 벌떡 일어설 수 있는 마법을, 화상으로 일그러진 육신을 위해 6년여를 매년 단골처럼 입원하는 젊은 여자 환자에게는 나이만큼 고운 피부와 외모를 가질 수 있는 마법을, 퇴원후에도 십여년이 넘게 매년 연하장을 보내주시는 시골의 어느 아저씨에게는 보내주시는 복 만큼 보다 더 많은 복을 가져다 드릴수 있는 그런 마법-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들 곁에서 늘 파수꾼처럼, 어떨때는 전장터의 병사처럼 앞서서 묵묵히, 편안함을 주기위해 애쓰는 우리들의 천사같은 간호사들에게도 밤낮없이 피곤한 몸을 이끌고 종횡무진하는 젊은 히포크라테스들에게도 곧 맞이하는 좋은 봄에는 더 많은 지혜와 정말 좋은 일들이 하나씩 생겨 줬으면 좋겠다.
아주 천천히 중년을 의식해 가면서 조금씩 게을러지려하는 내게로 청량제 같은 신선한 자극이 지금이라도 당장 일어나 주길 기대하며 오늘도 난 소리없이 봄의 기운이 물오르는 의료원의 언덕을 내려오고 있다.
(간호부 52병동 수간호사)
2월의 마지막 토요일 하루일을 마쳤다.
토요일 오전은 항상 그렇듯이 전쟁을 치르는 기분으로 시작한다.
짧은 업무시간에 비해 처리해야 할 일의 분량은 하나도 줄어들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부산하게 서너 시간을 뛰어 다니다 보면 어느사이 시계는 정오를 넘어가고 있다.
일주일을 마감하면서 자리에 앉으면 온몸에서 무언가가 다 빠져나간 느낌이다.
이 한 주일도 아무일 없이 무사히 넘긴 안도감 때문일까.
정리된 기분으로 문을 나서고 싶은 기대 때문에 사람들 틈에 뒤섞여 바쁘게 퇴근하는 것 보다 가끔씩 난 한시간 정도씩 늦게 내려가는 것을 좋아한다.
늘 북적대는 병원 현관 로비의 분위기에 비해 모두 다 빠져나간 텅빈 분위기가 훨씬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준다. 아주 가끔씩 오후시간이 여유로운 날은 텅빈 의자에 한참을 앉아 있다가 가기도 한다.
아직도 병원 안의 기운은 겨울 같은 썰렁함이 베어있는데 반해 한 겹 창문 밖은 많이 따뜻해 진 것 같다.
햇살도, 기운도, 사람들의 느낌도.... 봄이 오고 있음인가.
해마다 봄을 앞에 두고는 새로운 감동이 내게 찾아오길 기대하는 버릇이 있지만 그중 가장 큰 기대는 습관처럼 맞이하는 아침에 내가 잡아주고 오는 수많은 아픈 손들에 있다.
내손에 마법이 있어 그들의 손을 잡아주기만 해도 병상을 훌훌털고 일어나는 기적같은 일들-항암요법을 받느라 매우 힘든 꼬마 환아에게는 병마를 훌훌 털고 일어설 수 있는 기적을,
마비된 다리땜에 휠체어에 의지해 몸을 지탱하는 이들에게는 두 다리로 벌떡 일어설 수 있는 마법을, 화상으로 일그러진 육신을 위해 6년여를 매년 단골처럼 입원하는 젊은 여자 환자에게는 나이만큼 고운 피부와 외모를 가질 수 있는 마법을, 퇴원후에도 십여년이 넘게 매년 연하장을 보내주시는 시골의 어느 아저씨에게는 보내주시는 복 만큼 보다 더 많은 복을 가져다 드릴수 있는 그런 마법-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들 곁에서 늘 파수꾼처럼, 어떨때는 전장터의 병사처럼 앞서서 묵묵히, 편안함을 주기위해 애쓰는 우리들의 천사같은 간호사들에게도 밤낮없이 피곤한 몸을 이끌고 종횡무진하는 젊은 히포크라테스들에게도 곧 맞이하는 좋은 봄에는 더 많은 지혜와 정말 좋은 일들이 하나씩 생겨 줬으면 좋겠다.
아주 천천히 중년을 의식해 가면서 조금씩 게을러지려하는 내게로 청량제 같은 신선한 자극이 지금이라도 당장 일어나 주길 기대하며 오늘도 난 소리없이 봄의 기운이 물오르는 의료원의 언덕을 내려오고 있다.
(간호부 52병동 수간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