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컬에세이

희망이 있어 좋은 그들

작성자 : 윤은실  

조회 : 4284 

작성일 : 2003-09-02 04:15:30 

인턴이 되어 처음 접한 곳이 신경외과였다. 처음엔 맘이 그렇듯 지금와서 생각해 보면 꽤 열심히 돈 것 같기도 하다. 왜과거로 여겨지는 것들은 늘 그립고, 열심히 한 것으로 느껴지는지 모르지만 3주간의 기간이라(2월 말∼3월 중순) 더 그랬던 것 같다.
인턴 생활 중 가끔 생각나고, 지금도 다니다 만나면 반갑기도 한, 기억에 남는 환자가 여럿있다. 사실 신경외과 환자는 거의 말도 없고 의식이 깨끗하지 못했던 이가 많은 터라 보호자가 기억에 남는다 하는 것이 맞겠다.
욕창이 심하여 매일 드레싱(소독)을 해 줘야 하는 이가 있었다. 크기가 줄어듦에 따라 얼마나 보람도 커지던지... 그래서 하루하루 더 열심히 했다. ‘내가 도는 동안에 없애보리라’는 맘으로.. 결국 쬐금 남겨뒀다. 한계가 있었다. 그 남아있던 욕창은 내게 신경외과를 돌고도 궁금하게 만들기 위해 없어지지 않았나 싶다. 그 뒤 다른 인턴에게 줄였냐고 물었고 지나가면서도 병실에 눈길을 돌리게도 했으니...
욕창이 있던 환자의 보호자는 그의 형이었다. 오랜 기간 자기 동생을 위해 힘들면서도 항상 마주할 때면 평온한 얼굴로 수줍게 미소짓던 사람으로 환자를 닦고, 주무르고, 치우고, 사랑해줬다. 좀 그랬던 것이 욕창이 항문 바로 위쪽 위치라 면봉으로 약을 바를 때면 자극이 되는지 황금색 변을 굵게 봤었다.
희한하게도 그쪽에 얼굴을 가까이 하고 치료하는데도 냄새가 나지 않아 보호자랑 웃던 기억이 난다. 나중에 간호사한테 들은 얘기지만 좋은 걸 먹어서 그렇다나???(코 줄을 통해 캔에 있는 영양식을 먹었다.) 딴 길로 빠졌지만 아무튼 아저씨 혼자간병하느라 어깨가 처져 보이는 뒷모습은 애처롭지만 동생을 위해서 고생하는 모습은 정말 찡했다. 그래도 같은 병실의 보호자들이 잘 챙겨주고 아저씨도 그들을 도와주고 같이 둘러앉아 밥 먹고 하는 모습은 지금도 보기가 참 좋다.
같은 병실엔 두 달 전 의료원소식지에도 글을 올린 젊은 여자 환자 분이 있다. 인공호흡기에 의지하여 있지만 그 작은 자기만의 세상에서 빠듯하게 사는 우리보다 많은 것을 듣고 보는 것 같다. 드레싱을 하러 갈 때면 보는 책이 매일 달라져 있고, 가끔 수녀님도 왔다가고, 평온한 분위기가 좋았다. 오랜 병실 생활 속에서도 항상 깔끔하여 드레싱도 더 깨끗이 신경써야 했다.
요즘 부쩍 잘 마주치는 두 명. 잘 보지 못하는 아저씨 손을 꼭 잡고 병원 안 곳곳을 다니는 키 작고 귀여운 아줌마가 있다. 지금은 재활의학과로 전원되었지만 그 아저씬 내가 돌던 3월엔 신경외과에 있던 분으로 그 땐 상태가 좋지 않아 드레싱을 할 때면 기침으로 가래도 멀리 튀고, 말도 한 적 없지만 보호자 되는 아줌마는 그 병실에서 나올 때마다 날 미소짓게 만들었다. 손에 쥐어 준 드링크제가 컸겠지만... 지나가다 슬쩍 본 모습은 침대 위 밥상 머리맡에 올라가 둘이 다정한 모습으로 밥 먹는 모습이 보기 좋고 아저씨 옆에 항상 찰싹 붙어있는 그 얼굴에서 희망을 보았다. 맘이 밝아진다.
석 달이 지난 지금 또 신경외과를 돈다. 이번엔 중환자실이다. 여기도 사랑스런 이들이 있다. 양치질도 못하고 씻지도 못하여 나는 특이한 냄새가 돌지만 그들도 따뜻한 체온을 가진 이라 피를 뽑으려고 손을 잡을 때면 더 따뜻이 감싸 쥐어주는 그들이 고맙다.
상태가 좋지 않아 하루에도 4번씩 피를 뽑아 검사하는 아줌마는 정신이 맑았다가도 한 번씩 헷갈린다. 오늘은 내 명찰을 빤히 보고도‘박선생님 인가?’했다. 아마 주치의랑 착각했나?
‘병원 아가씨들은 피부도 다 뽀해’, ‘내 피 많으니까 자주 뽑아 가’라고 하며 꽉 잡은 내 손바닥을 자신의 검지로 살짝 긁는다.
애정 표현이라 생각한다. 손 잡는 걸 참 좋아하는 분이라 계속 기억날 것 같다.
뇌출혈로 수술한 아줌마 한 분은 한 쪽 눈이 감겨져 있다. 애꾸눈 같으나 힘 주면 두 쪽 다 뜬다. 도톰한 입술로 오히려 날 걱정하는‘밥 문나?’, ‘고마해라’할 때면 반말로 굉장히 기분 나쁠 수도 있는 데 이 아줌마는 정겹게 느껴진다. 내가 볼을 한번 쓰다듬어 준다.
누워서 지내다 최근 휠체어를 타는 아저씨가 있다. 보호자인 아줌마는 요즘 예쁘게 웃으며 인사를 해준다. 아저씨랑 이어폰을 나란히 꼽고 다니고, 아줌마 말로는 아저씨가 평소에 너무 무서워서 언제 이렇게 한 번 때려보기도 하겠냐며 애기 다루 듯 좋아하신다.
사고나 뇌출혈 등으로 처음 병원에 온 당시에는 절망 그 자체였을 것이다. 사람이 살 수 있는게 자신도 모르게 생기는 희망과 적응력 때문인 것 같다. 살아주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여길 수 있을 것 같다. 내 부모와 형제라도...
중환자실에서 일을 마치고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던 중 의자에 앉아 생각해 본다.
(윤은실/인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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