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컬에세이

마지막 인사

작성자 : 최재원  

조회 : 4375 

작성일 : 2003-09-02 04:09:55 

간혹 내가 어쩌다 의사의 길을 걷게 되었을까 생각해 보곤 한다.
그 중에서도 내과 의사로서의 삶은 내가 선택한 길이고 나는 이 길을 평생 걸어가야 할 것이다. 의사는 여러 환자와 또, 그 환자의 병과 끝임 없는 만남을 반복하며 살아야 한다. 그 중에서 내가 1년차 초에 만난 어느 환자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
그는 나와 동갑이었고 아직 미혼이고 사업을 하였다고 한다. 그러던 중 갑자기 복수가 차고 황달이 생겨서 입원하였다. 나는 그를 환자와 담당의로써 만나게 되었는데. 내가 처음부터 그를 담당했던 것은 아니고 달이 바뀌어 내가 소화기내과 분과로 소속이 바뀌게 되어 담당의가 되었는데 그는 이미 한 보름 정도 치료를 받고 있었으나 아직 호전이 없던 상태였다. 키가 무척 컸고 이목구비가 시원하게 생겼으나 황달이 와서 누런 얼굴이었다. 병명은 급성 간염이었고 이미 비대상성 악화가 오고 있었다.
많은 환자들 중에 한 명의 환자였지만 내가 그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했던 것은 그가 나와 동갑이었다는 것과 그가 회복할 가능성이 높지 않을 것이라는 나의 판단 때문이었다. 무척 바쁘고 또, 힘겨운 생활 속에서 내가 보여줄 수 있는 관심은 그리 크지 않았다.
그러던 중 그가 집에 간다고 했다.
밖에 벌려 놓은 사업도 정리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다인실에 있었는데 다인실의 분위기가 별로 좋지 않아 밤에 잠을 푹 잘 수 없어 집에 가서 푹 자면 괜찮아 질 것 같은 생각도 든다고 했다. 할 수 없이 보호자를 불러 자진퇴원서약서를 쓰고 퇴원을 하였으나 이틀이 지나서 그는 다시 응급실을 통해서 입원했다.
하지만 상태는 퇴원 전 보다 더 악화된 상태였다. 그 후 그는 콩팥기능이 나빠지기 시작했고 복수가 더욱 차면서 간성 뇌증이 찾아왔다.
정신이 혼미해지면 내과적 치료로 조금 회복되고 다시 혼수가 찾아오는 상태가 반복되었다. 보호자에게 환자가 간부전으로 가고 있음을 설명하고 환자가 얼마 버티지 못할 것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그가 악화와 약간의 호전이 반복되는 동안 나는 소화기내과에서 일하는 한달이라는 시간이 지나고 나는 다른 레지던트에게 그를 인계하고 다른 분과에 소속되어 다른 환자들을 보게 되었다.
달이 지나고 며칠이 지난 오후였다. 나는 교수님과 회진을 돌고 있었는데 다른 환자를 보기 위해 그가 입원해 있는 병실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는 문가 쪽 침상에 누워있었다. 병실안의 환자를 보고 나오려는데 누군가 나의 팔꿈치를 잡아당겼다. 돌아보니 그의 어머니였다.
그가 나를 불렀다고 하였다. 내가 그의 침상을 향해 돌아보았을 때, 그는 더욱 누래진 얼굴로 복수가 차 숨을 헐떡이고 있었는데 힘겹게 고개를 숙이고는 나를 향해 환한 웃음을 보였다. 그의 어머니가 통역인양 고맙다고 합니다라고 말하였다. 나는 회진시간에 쫓겨 약간의 목례로 답하고 그 병실을 나와야 했다. 하지만 그것은 마지막 인사였다.
그 뒤 그 병동 앞을 지나가며 그의 어머니가 그의 누나의 부축을 받으며 오열하며 걸어가는 모습을 보았을 때 조금전 그가 죽었음을 알았다. 그는 그렇게 이 세상을 떠난 것이다.
그때 그는 그것이 마지막 인사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까? 지금도 나는 그 웃음이 참 밝았다고 기억한다. 그리고 그 힘겨운 투병의 순간에 나에게 보여준 그 인사에 대한 나의 답례가 부실했음에 미안한 생각이 든다.
내가 내과에 들어온지 이제 1년이 약간 지났다. 오늘도 환자를 보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처음에 가졌던 마음들이 어쩌면 경험이라는 말로 점차 무뎌지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가 나에게 건낸 마지막 인사에 대한 적당한 답은 경험이나 지식에 있지 않을 것 같다. 나는 아직도 그 답을 찾고 있는가?
(최재원 / 내과 레지던트 2년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