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컬에세이

보호자라는 이름의 또 다른 간호사

작성자 : 김숙현  

조회 : 4483 

작성일 : 2003-04-30 10:24:16 

장남인 오빠가 서른이 되어 결혼한 지 두 해가 지나도록 애기 소식이 없었다. 처음엔 좋다는 약, 병원, 점집도 모두 다녀봤지만 이상이 없었기에 하늘의 뜻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결혼한 오빠와 같이 살던 터라 가끔씩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고, 털털하고 시원한 성격과는 달리 집안일 만큼은 결벽증이 있을 정도로 치우고 닦던 새 언니는 해가 갈수록 불임에 대한 스트레스로 증상이 심해졌다. 화장대 위 화장품 간격이 더욱 치밀해졌고, 바닥의 떨어진 머리카락 하나, 씽크대 위 물자국 조차 지나치지 않았다. 그런 언니를 지켜보면서 언젠가부터 안스러워지기까지 했다.
시간이 흘러 3년이 지나 드디어 새 언니가 임신했다. 무더운 더위를 씩씩하게 이기고 추운 겨울이 지나 출산예정일을 며칠 앞둔 어느 날 양수가 터졌다. 불안해하는 언니를 데리고 바빠서 올 수 없는 오빠를 대신해 보호자 겸 언니 옆에 있었다. 보호자로서 처음 가본 응급실이며 분만실. 한시도 마음 편히 있을 수 없었다. 분만촉진제를 맞는 언니는 약간 상기되어 있었고, 잠시지만 진통이 사라지는 틈에 새우잠을 청했다. 일이 많고 힘든 밤 근무 때 불켜진 병실을 순회하면서 곤히 잠든 환자와 보호자를 볼 때 정말 부러웠는데 병원에서 잔다는 것은 생각만큼 그리 편하지 않았다. 어둑어둑했던 밖이 새파랗게 변했을 때쯤 진통 간격이 잦아오고 언니의 신음소리 역시 높아졌다. 곧 나오려는 지 면회는 안되고 초조한 마음으로 문 밖에 앉았다 일어서기를 수 차례, 불빛만 새어나오던 문틈으로 쩌렁쩌렁한 아기 울음 소리가 흘러 나왔다.
“아들입니다.”
예쁜 간호사 언니 품에 안겨온 조카를 본 순간 아무 말도 나오지 않고 계속 눈물이 났다.
오빠와 다른 가족들이 오고 병실로 가는 언니를 보고서야 집으로 올 수 있었던 나는 긴장이 풀려서인지 그때부터 몸이 쑤시고 아파오기 시작했다. 입안도 까실까실 해서 뭘 먹어도 무슨 맛인지 몰랐다. 하루도 안 되는 병원 생활이었지만 느낀게 많았다. 홀로 배선실 탁자에 앉아 식은 밥에 밑반찬 드시며, 하루 이틀로 끝나지 않는 병마와 싸우는 환자 곁에서 그저 물끄러미 바라보며, 가족이라는 이유로 자기 일을 희생하며 오로지 회복되기만을 바라는 보호자분들... 그후 밤 근무할 때 좁은 보호자용 침대에서 홑이불을 덮고 잠을 청하는 그분들을 볼 때 참 측은하고 존경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김숙현 / 101병동 간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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