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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우리를 알자 - 김성광 교수

작성자 : 홍보팀  

조회 : 2160 

작성일 : 2006-08-30 02:06:24 

특집기획 _ 정든 의료원을 떠나며

나와 우리를 알자

- 부끄럽지 않은 교육자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해 왔고 남은 여생도 나와 우리를 알아가는 과정 속에서 보람 있는 일에 매진할 터 -

미생물학교실 김 성 광 교수

한국 땅 안에서의 우리는 우리를 잘 모르고 지내기가 쉽다. 그러나 항상 우리는 ‘나와 우리를’ 알아야 한다. 나와 우리가 현재 어떠한 위치에 있으며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이 어떠한 가를 인식할 때, 나의 생각이나 행동은 새로운 차원에서 모색되리라고 본다.

대학에 전임강사 발령을 받으면서, 평소에 내가 그리던 이상적 교수 상은 풍부한 학식, 높은 인격 그리고 확고한 주관을 가진 창조적 스승이었다.
그런데 과연 내가 훌륭한 대학자나 인격 높은 교육자가 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의문과 걱정이 나를 망설이게 하였다. 우선 내 자신을 돌아보았을 때 세계적으로 인정받을 만한 대학자가 될 능력이나 자질을 갖추지는 못하였다고 판단되었다. 따라서 내가 만일 교수 생활을 계속한다면 대학자는 될 수 없더라도 다만 부끄럼 없는 교육자가 되도록 전력을 다 해야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이 길에 오르기로 한 것이다.

화가는 사람을 ‘그리고’ 소설가는 사람을 ‘서술’하지만 교육자는 사람을 ‘만든다’는 말과 같이 단순한 지식의 전달자로서가 아니라, 올바른 삶의 방향을 제시해 주고 질병과 생명을 다루는 전문인으로서의 인격을 길러주는 교육자, 이와 같은 교육자가 된다는 것이 사실은 대학자보다 더 어려운 길임이 분명하다는 확고한 주관을 가졌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속에 서서히 또 다른 걱정이 생기게 되었다. 혹 매년 되풀이되는 강의 내용이 새롭지 못하고 학생들은 물론이고 나 자신도 지루함을 느껴 강단에 서는 자신이 부끄러워지지는 않을까 하는 염려로 자신을 돌아보게 되곤 하였다. 적어도 교수라면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실망을 안겨 줘서는 안된다는 생각과 항상 한 걸음 앞서서 미래 지향적 방향을 제시하고 창조적으로 가르쳐야 된다는 생각 때문에 더욱 번민의 고통이 커지게 된 것이다.

교직 생활 33년을 지나면서 마음속에 더욱 다짐했던 것은 지금 걷고 있는 이 길을 ‘밥벌이’의 한 방편으로서가 아니라, 내 인생 전부를 투자하여 거기서 내 인생의 보람과 결과를 갖도록 매진하자는 것이었다. 이 결심은 이제 정년퇴임이라는 분기점에 서 있어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만일 앞으로 내가 이상으로 하는 창조적 교육자가 될 수 없다고 판단될 때에는, 우물우물 눈치를 보지 말고 지체 없이 신성한 이 강단을 내려와야 되지 않느냐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내 비록 세계 미생물학 학계에 영원히 길이 남을 대학자는 되지 못했을지 몰라도 내 자신이 안일한 학자가 되지 않기 위해 나의 일본 유학 시절 맺었던 인연들을 바탕으로 새로운 연구에 매진 일본 대학들과 교류하면서 내 맡은 일에 충실하였으며, 이젠 각기 훌륭한 의사와 학자들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옛 제자들이 아직도 잊지 않고 찾아주고, 지금은 더 이상 ‘실질적’으로 힘이 되어 주지 못할 지도 모르는 늙은 스승의 회갑 잔치까지 마련해 주었으니, 나의 처음 목표했던 부끄럼 없는 교육자의 삶을 살았다 할 수 있지 않나 생각하며 내 인생의 한 고개를 돌아보니 흐뭇함이 살짝 고개를 든다. 이 흐뭇함과 함께 드는 아쉬움이 있다면 좀 더 넓은 세상과 대화하지 못한 나의 게으름이라고나 할까?

한국 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하나가 되어 학문적, 문화적 교류를 할 수 있는 이 좋은 세상에서 내 조금 더 부지런했다면 정년이라는 이 시간을 맞기 전에 더 풍부한 학문과 넓은 인품으로 더 많은 것을 나눠줄 수 있는 스승의 길을 가지 않았을까 또 더 폭넓은 ‘우리’를 만들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라고 하겠다. 이 아쉬움을 뒤로 하고 퇴임을 하지만 이제 내가 새로이 서게 될 내 자리에서 다시 만나질 ‘나와 우리’를 알아가며 아니 나보다 이웃을 먼저 생각하면서, 나의 인생 경로가 모래 위에서나마 발자국도 남기지 못한 무위 인생일지라도 그 영혼이 떠났다 해서 종지부가 아니요, 무언가 쓸모 있게 바칠 수 있는 기회가 다시 한 번 있을 것이라는 자위감을 느끼곤 한다.

「의로운 고난과 희생은 결코 헛됨이 없이 영원한 생명으로 보답한다.」는 나의 스승의 말씀을 되새기며 남은 여생을 보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