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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의료봉사를 다녀와서 - 2

작성자 : 홍보과  

조회 : 2863 

작성일 : 2005-10-07 09:48:18 

해외 의료봉사 활동 후기 _ 2

캄보디아 의료봉사 활동을 다녀와서...

- 애국심이나 공명심이 아니라 불우한 이웃이나 환자를 위해서는 국경과 인종을 초월, 진정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사랑과 정을 베풀어야, 우리가 한 것은 아주 작은 일이지만 ‘Pride of Asia'라는 생각도 가져보면서 -

장경순 / 간호부 121병동 간호사

첫 날의 의료봉사 활동을 무사히 마치고 맞이한 둘째 날.
봉사 활동지로 가는 길은 그새 익숙해져 버렸는지 끝없이 펼쳐진 창밖 풍경이 편안함을 주었다. 대부분의 국토가 평지인지라 이 곳 시엠립에서도 가장 높은 산이 400m 정도라고 한다.
우리는 사원에 도착해서 사찰 안을 가득 메운 약 1,000여명 가량의 사람들을 보고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대로 내렸다가는 우리 22명은 그들 틈에 압사당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버스에서 내리지 못한 우리들은 흡사 우리에 갇혀있는 원숭이 꼴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캄보디아 원주민인 크메르족은 산스크리트어를 사용하는데 이 말은 구어체라, 첫 날 우리의 진료소식이 입소문으로 번져 그 인근의 주민들이 꼭두새벽부터 일어나서 진료장소로 오기 위해서는 4~5시간씩 걸리는 거리도 아랑 곳 하지 않고 이동하여 우리를 기다렸던 것이다.
가까스로 현지 주민 가이드들이 먼저 내려서 사원을 비우게 하고, 진료공간을 확보하고 나서야 버스에서 내려올 수 있었다.
어떻게 보면 우리의 인기가 아주 높다는 것인데, 이를 기뻐해야 할 지, 말아야 할 지라는 야릇한(?) 생각도 들었다.
전날보다 많은 환자를 진료하였지만 지난 2004년 2월부터 올 1월까지 1년간 우리 병원 진단방사선과에서의 펠로우쉽 수련과정을 위해 파견을 다녀간 이 나라 의사 암타씨(Dr. Sysoth Amtha)가 합류하여서인지 진료가 순조롭고 질서정연하게 이루어 졌다.
우리 투약팀은 첫 날은 700명, 둘째 날은 800여명의 약을 짓느라 고개 한 번 돌릴 틈도 없을 정도로 바빴지만, 사원 밖엔 진풍경이 벌어졌다고 한다.
음료수나 아이스바 장수, 삶은 옥수수, 코코넛잎에 싼 찰밥, 과일장수 등이 진료장소인 사원 근처로 와 진을 쳐서 작은 시장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다음날은 세계 7대 불가사의로 잘 알려진 앙코르와트를 보러 갔다.
그 아름답고 장엄하기까지 한 주위 경관들과의 조화, 웅장함, 수 많은 석조조각, 벽화들을 보면서 실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평생에 한 번 볼까말까한 밀림 속의 거대한 미완성 건축물로, 이 곳 크메르족 선조들의 위대한 문화유산 앞에 머리가 절로 수그러졌다.

지금도 톤레삽 호수의 황토물을 생각하면 멀미가 난다.
그 곳 수상촌 대부분은 베트남 난민들이었다. 보트 피플(boat people)로 이 지역에 흘러들어 캄보디아의 법(法)으로는 육지에 나가서 살 수가 없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자기들이 버린 오폐수를 식수로 쓰고, 그물로 가두리 양식장도 꾸미고, 선상에서 돼지도 키우며 살고 있는 불우하고 가난한 사람들이었다.
새삼 내가 우리 나라에서 태어나 사는 것이 너무나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일정 때문이긴 하지만 모두들 입을 모아 이 분들을 도와주지 못한 것에 대해 무척 안타까워 하였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꼭 다시 이 곳을 방문하여 봉사를 펼치리라 다짐을 하면서 돌아왔지만, 그들이 불쌍하고 측은하게 여겨지는 생각을 머리 속에서 떨칠 수가 없었다.

목사 내외분은 현지 선교지 몇 군데를 더 들려야 한다며 먼저 떠나셨고, 우리는 의료봉사 4박 6일간의 일정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왔다.
그리고 후담으로 들은 이야기지만 캄보디아 시엠립 지역방송 TV에 우리의 의료봉사 활동이 방영되어 캄보디아에 있는 교민들의 입지에 도움이 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나니 보람도 있고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나라가 예전에 궁핍하고 어려웠을 때, 주위의 선진국으로부터 받은 도움과 사랑의 손길이 현재 이 곳과 이보다 더 형편이 어려운 지역에 계속적으로 이어지기를 기원해 본다.

이렇게 우리의 캄보디아 의료봉사는 끝이 났다. 귀국한 지도 한 달 이상이 지났다. 지금 우리는 일상으로 돌아와 각자의 근무지에서 생활하고 있지만, 아직도 그 때의 기억이 눈에 선하다. 피부색이 까무잡잡하고 작고 마른 이방인인 그들이었지만 진료활동을 하면서 보았던 캄보디아 어린이의 그 까만 눈동자를 잊을 수가 없다. 국경과 인종을 초월하여 사람이 사는 곳이면 어디서든지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사랑과 정을 베풀고 나누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한 일은 작고 미미하였지만 ‘Pride of Asia'라는 큰 자신감도 가져 보면서 진정으로‘찾아가는 봉사문화’가 잘 정착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