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컬에세이

청진기를 든 젊은 그들

작성자 : 고영진 인턴장  

조회 : 3225 

작성일 : 2008-03-31 01:19:02 

새내기 인턴 수련기 _ 고달프지만 꿈꿀 수 있는 행복

청진기를 든 젊은 그들

- 밤낮으로 노력하는 우리의 성장과정을 즐겁고 느긋하게 지켜봐 주길... -

고 영 진 / 인턴장

■ 기다렸다는 듯 늘 잠을 깨우는 녀석
밤 10시 23분, 라면으로 허기를 달래고 자리에 누웠다. 콜벨(Call-bell)이란 녀석은 항상 잠이 들려고 하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 울린다. “인턴쌤, EKG(심전도 검사) flat(편평한) 있어요.” 그냥 심전도 검사면 검사지 플랫은 뭐야. “네? 뭐라구요?” “Expire(사망)한 환자 있다고요.” “......” 오늘만도 세 번째다. 병원에서 환자가 죽는다는 것은 누가 생각해봐도 쉽게 수긍이 간다. 하지만 내과에서만 그것도 하루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사망한다는 사실은 퍽이나 놀랍다. 이번엔 누굴까, 내가 드레싱 하던 환자일까, 1시간 전 응급혈액 검사한 환자일까, 내가 모르는 환자였으면... 10층에 도착해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저 멀리서 곡소리가 들려온다. “EKG(심전도 검사)찍고, Foley catheter(도뇨관)랑 CVP catheter(중심정맥내관) remove(제거) 해주세요.” 간호사는 차분하게 얘기하고, 나는 조용히 기계랑 도구를 챙긴다.

■ 종합병원 초짜 염장이, 그 이름 인턴
2인 병실에 아주머니 한 분이 쓰러져 울고 있고, 할머니 한 분이 조용히 누워 계셨다. 꾸벅 인사를 하고 조용히 아주머니 곁에 다가가 “할머님이 돌아가신 것이 확실한 지 마지막으로 심전도 검사를 하겠습니다. 몸에 달고 계신 것들도 깨끗하게 정리해드리겠습니다.” “아직... 따뜻하잖아요! 이렇게 따뜻한데, 어떻게 죽었다는 거죠?” 아주머니가 울부짖었다. “.......” 할머니의 입엔 관이 들어가 있고, 가슴엔 수액이 들어가는 굵고 긴 관과 기기들이 덕지덕지 달려있었으며, 아래엔 소변 줄이 꼽혀져 있었다. 심전도 검사는 역시나 아무런 변화가 없는 수평선으로 나왔다. “돌아가셨습니다.” 돌아오는 대답은 울음소리뿐이다. 할머니 몸에 붙어 있는 것들을 제거하기 시작했다. 이젠 아무런 의미가 없지만, 베타딘(소독솜)을 갖고 관이 뽑힌 자리를 습관적으로 닦는다. 지혈을 시키고 오래도록 피가 멈추지 않으면 한 바늘 꿰맨다. 깨끗한 거즈를 대고 반창고를 붙인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다시 인사를 하니 이제야 나를 보고 아주머니도 눈물을 감추며 대응을 한다.

모든 사람은 죽으면 염을 받는다. 가시는 길, 좋은 모습으로 보내려는 남아있는 사람들의 안타까운 마음이 염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인턴은 종합병원 초짜 염장이다. 고인 옆에 있는 모든 이들이 그를 가지 말라고 잡을 때 우리는 고인 몸을 깨끗이 정리하고, 좋은데 가시라고 조용히 이야기한다.

■ 측은지심(惻隱之心)을 유지하는 의사가 진정한 명의(名醫)
인턴생활 첫 날 중환자실에 불려간 적이 있다. 할머니 한 분이 의식이 없었는데 머리에 욕창이 생겨서 소독을 해야 했다. 붙어있던 반창고를 떼어내니 머리카락이 한 움큼 붙어서 같이 뽑혔다. “아이고, 할머니 머리카락 다 뽑히겠네.”라고 했더니 옆에 있던 간호사가 “쌤, 지금 그 마음 1년 뒤에도 유지하세요. 그럼 훌륭한 의사가 될 거에요” 라며 웃는 것이었다. 이 마음은 사실 누구나 다 가지고 있는 ‘측은지심’이다. 의사생활을 오래 하게 되면 이 마음을 계속 품기가 그리 쉽진 않은가 보다. 아픈 사람들만 보고 죽음을 너무 많이 접하다 보니 감정이 무뎌지는 건 어찌 생각해보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 시대의 명의란 전문적인 의학적 지식과 실력을 갖추는 것뿐만 아니라 이 ‘측은지심’을 끝까지 잊지 않는 의사일 것이다.

올해 인턴들은 심성이 착하다는 이야기를 여기저기서 많이 듣고 있다. 우리 인턴 모두는 훌륭한 의사를 꿈꾸며 밤낮을 가리지 않고 노력할 것이며, 여러분들은 우리들의 성장과정을 즐겁게, 조금은 느긋하게 지켜봐 주었으면 좋겠다.

※ 교육연구부는 2월 11~13일, 18~19일 두 차례 2008년도 신규 인턴 52명을 대상으로 이론 및 실습교육을 실시했습니다. 현재 이들은 병원 전 진료과에 걸쳐 순환근무를 하면서 임상수련을 통해 실제에 관한 기초적이며 광범위한 경험을 쌓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