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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환우사랑, 병원사랑 공모 수필 대상작 _ 선물

작성자 : 이 유 진  

조회 : 3136 

작성일 : 2008-11-26 17:27:37 

2008 환우사랑, 병원사랑 공모 수필 대상작


선 물


- 안녕, 소년아. 이렇게 난 너를 그리워하며 잘 생활하고 있단다 -


이 유 진 / 심혈관계중환자실


“아이고.. 잘 먹지도 못하는 아가 설사를 저래 해서 우짜노. 안쓰럽다카이.”

깡마른 몸에 큰 키, 새까맣고 푸석한 피부, 머리카락이 없어 반짝거리는 머리. ‘토그릇(구토할 때 쓰는 그릇)’을 머리맡에 두고 피자, 라면, 치킨냄새를 고스란히 맡으며, 배고픔과 힘겹게 싸웠을 아이. 2006년 봄, 그 소년과의 첫 번째 만남이었다.


병명은 급성 골수성 백혈병.

수차례 있을 항암 치료와 골수 검사, 그 과정에서 겪을 고통들을 간호사인 나보다 더 많이 알고 있고, 유난히 말수가 적어 어른 같던 그 아이. 소년은 심각한 장 염증으로 인한 발열, 오심, 구토, 설사 때문에 며칠째 물 한 모금 먹을 수 없는 상태였다. 물에 젖은 천 조각 마냥 축 쳐진 채 침대 구석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던 그 모습. 한참 많이 먹고 뛰어놀아야 했던 열일곱 소년은 정말 누가 봐도 환자 중에 환자였다. 나는 손을 깨끗하게 씻고, 손소독제를 열심히 문지르며 소년을 만났다.

 

“음, 안녕? 오늘은 설사 몇 번 했어?”

“......”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 섭취▪배설량을 적은 종이를 슬며시 내민다. 나중에서야 본 거지만, <안녕, 형아>란 영화에서 뇌종양에 걸린 주인공이 울면서 했던 대사가 생각난다. 한별아, 간호사 선생님이 물어보시잖아. 왜 대답을 안 하니? 아픈 것도 힘든데 내가 대답까지 해줘야 해? 흑흑


그 소년도 같은 마음이었으리라.

하루에도 20번이 넘는 설사, 구토. 이제는 당연하게 스스로 기록을 하는 게 얼마나 귀찮고 싫었을까? 그것도 모자라 그 종이를 보고 나서도 이것 말고 더 빠진 것 없냐고 일일이 물어대는 내가 얼마나 성가셨을까? 내가 그였다면 귀마개로 귀를 틀어막고, 그냥 좀 알아서 적어가라고 화라도 냈을 것 같다. 오줌이며 똥이며 모두 다 확인하려는 게 얼마나 낯 뜨거웠을까? 그냥 좀 불쌍했다. 이런 철없는 동정 따위는 그들을 더 비참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알지만, 17살 소년에겐 너무도 잔인했다.


간호사실로 돌아왔다.

자꾸 소년 생각이 났고 일에 집중을 할 수 없었다. 감히 상처를 어루만져주고 싶었고, 그냥 그 말로 충분했다. 그러나 사회경험도 미미한 신규간호사가 그들 상처를 끌어안아 준다는 건 생각보다 힘든 일이었다. 싫어도 웃으며 모든 짜증과 눈물, 불평들을 받아주기만 해야 했고, 이는 내가 가지고 있는 그릇에 비해 차고 넘치는 것이었다. 그날 이후 반갑지 않은, 늘 찾아오는 손님. ‘슬럼프’에 빠지게 되었다.


그렇게 몇 주가 흘렀다.

그동안 아무 생각 없이 아이들을 보는 게 오늘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버텼다.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른 채 오프(off)만 기다리며, 생활할 때쯤 조그마한 변화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나에게 장난을 걸어오고 웃는 모습들을 자주 보여준다. 쌤이 제일 빨리 와줘서 고맙다고, 수고한다며 방금 깎은 과일을 입에 넣어주는가 하면, 맨발로 달려와 빨갛게 양념이 발려진 뼈 없는 닭발을 입안에 넣어주기까지. 맛이 얼마나 일품이었는지 아직도 그 맛을 찾아내지 못했다.


행복했다. 

행복하다는 말을 이럴 때 쓰는가 싶었다. 간호사가 된 후 처음으로 느껴본 기분이었다. 무작정 설레고 즐거웠고, 천사 같은 아이들이 나를 가족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는 게 감동스럽기까지 했다. 그 소년도 나에게 조금씩 장난을 걸어온다. 다른 아이들이 하니 덩달아 따라하는 모습이 영락없는 17살 소년 같아 너무 보기 좋았다. 매일 20번씩 쫙쫙 쏟아내던 설사도 많이 줄어들었고 드디어 퇴원이구나. 커다란 마스크로 코와 입을 가리고, 씩씩한 걸음걸이로 간호사실 앞에 걸어와서는 쑥스러운 듯 머리만 꾸벅 숙여 인사를 하고 돌아가던 너의 뒷모습. 얼마나 마음이 뿌듯했던 지. 그렇게 소년은 항암 치료를 받기 위해 한 번 더 입원과 퇴원을 했고, 나도 이제 소아청소년과에 점점 적응을 해가고 있었다.


몇 주가 지났을까?

한참 뜨거워진 날씨. 6월, 소년이 다시 입원을 했다. 40도를 오르락내리락하는 고열에 온몸을 웅크리고, 많이 힘들어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조금 느낌이 이상했다. 온몸에 번져있는 이상한 까만 점들. 내가 본 모습들 중 지금이 제일 나빴다. 아니, 더 나빠질 것 같았다. 그렇게 소년은 1인실로 격리되어 졌고, 외로움 속 집중 치료가 시작되었다. ‘토그릇’과 ‘찬송가’만이 지키고 있는 병실에서 소년이 느끼는 괴로움은 점점 심해져 갔다.


어머니가 보인 슬픈 울음

그날, 교수님께서 소년이 있는 병실로 회진을 오셨고, 어머니를 복도로 잠시 부르셨다. 나는 병원생활을 오래하지 않았지만, 그런 모습을 자주 보았다. 복도로 불러내면 이윽고 보호자들이 눈물을 보이는 모습을... 아니나 다를까 어머니는 대성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다른 간호사가 어머니 등을 쓸어내리며 위로를 해주었다. 그렇게 소년은 ‘오늘내일 하는 환자’가 되어버렸다.


내가 배 아파 낳은 자식, 내 새끼...

그런 내 새끼가 아프다는 것. 그리고 나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다는 것. 어떤 느낌일까? 아직 결혼을 해보지 않은 내가 그 말에 대한 의미를 헤아린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했다. 하지만 가슴이 왜 이렇게 쓰리고 답답한지? 모르긴 몰라도 분명, 엄청난 슬픔임이 틀림없다. 사람들이 나보고 태연해지라고 했다. 원래 그런 거라고, 그냥 병원에 오래 있으면 그렇게 될 거라고 했다. 병원에 오래 있게 되면 사람 생명, 피범벅이 된 바닥, 보호자들 눈물... 이런 것들에 초연해져 아무런 느낌이 들지 않고, 오히려 바빠서 짜증이 날 거라고 했다. 나는 죽음에 의연해지기 싫었다. 이렇게 가슴이 아픈 게 차라리 좋았다. 귀를 닫았다. 나는 가슴이 따뜻한 사람이고 싶었고, 그렇지 않게 되는 순간 병원을 떠나리라 마음먹었다.

   

찬송가가 끊이지 않았다.

그 노랫소리만 들어도 슬픔이 밀려왔다. 다행이다. 아직 내 심장은 살아 숨 쉬고 있구나... 어머니 자신도 암에 걸려 치료를 받은 적이 있었던 터라 죄책감이 드셨을까? 아들 다리를 수없이 주무르며 얼르신다. 계속되는 고열과 구토, 마약진통제를 쓰지 않으면 견디기 힘든 통증 그리고 외로움과 공포까지 이제 갓 열일곱. 소년이 이겨내야 할 짐들이 너무 많았다.


소년의 소원은 냉장고

그러던 중, 소원을 들어주는 자선단체가 그를 방문했다. 격리생활을 해야 하는 아이들에게는 유일한 재미거리인 게임을 원 없이 즐길 수 있는 ‘노트북’이 단연 받고 싶은 선물 1위였다. 하지만 소년은 너무 많은 걸 알고 있었다. 그날 대성통곡하던 어머니 울음소리, 계속해서 들려오는 찬송가. 그리고 무엇보다 점점 힘이 없어져가며, 뼈밖에 남지 않은 본인 몸. 그래서였을까? 소년이 밝힌 소원은 냉장고였다. 여자들이라면 누구나 갖고 싶어한다는 냉장고. 자신을 위해 지금까지 호강 한 번 못한 어머니께 늘 아픈 모습만 보여 미안한 마음이 들었을까? 소년에게 어머니는 미안함, 그것뿐이었을까?


7월 1일.

이제 소년은 말을 거의 할 수 없다. 너무나도 극심한 통증 때문에 온몸에 힘이 들어가면 어머니는 슬며시 간호사실로 오셔서 진통제를 달라고 하셨고 그 용량도 점점 세져만 갔다. 갑자기 주치의와 다른 간호사가 소년이 있는 병실로 뛰어가신다. 알 수 없는 무언가에 이끌려 나도 따라 간단한 처치 도구들을 들고 뛰었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지만, 그냥 가슴이 쿵쾅거리며 손도 조금씩 떨려왔다.

 

오후 12시 50분.

병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소년은 온몸을 떨며 힘들어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내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Cheyne-strokes 호흡(체인스톡 호흡, 과호흡과 무호흡이 교대로 나타남, 임종호흡)이었다. 어머니는 그때서야 당신 아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셨고, 얼굴을 어루만지며, 연거푸 말씀하신다.


“엄마가 미안해...”

“엄마가 미안해... 엄마가 미안해... 흑흑” 내 시야도 점점 흐려지고 있었다. 소년은 더 이상 힘든 모습을 보이기 싫어서였을까?  그 순간 심전도가 정지 상태를 가리켰다. “뚜------뚜뚜.”, “O시 O분 사망하셨습니다.” 주치의가 사망선언을 했다.


순간 적막이 흘렀다.

그리고는 대성통곡할 것만 같았던 어머니는 울음을 삼키셨다. 눈물을 참으며 애써 담담한 표정을 지으시며, 우리 보고 수고했다고 인사를 하신다. 이해가 되질 않았다. 오늘이 마지막인데, 우리들을 붙잡고 하소연이라도 할 것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어머니는 너무나도 담담해 보였다.

 

규칙 아닌 규칙

“다른 병실에 애기들도 있는데... 여기서 큰소리로 울면 다른 애들 충격 받아서 안  되요.” 그것이었다. 그것이 소아암 환우 부모님들이 지닌 규칙이었다. 같은 병과 싸우고 언제 어떻게 될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아이들 운명. 그곳에는 받아들이기 힘들어도 그래야만 되는 게 있었고, 울고 싶어도 울음을 삼키는 법을 배워야 했다. 소아암 환우들 모두가 내 새끼들이고, 떠나보내기 싫은 사랑스런 존재였던 것이다.


가슴이 우-리했다.

다행히 나는 아직 따뜻한 가슴을 지닌 간호사였다. 우-리하게 아프면서 식도까지 뜨거운 무언가가 올라오는 듯했다. 내가 소아청소년과에 배치를 받고 처음으로 너를 하늘나라로 보내는구나. 나도 이제 모든 아이들을 사랑으로 품어 내 새끼들처럼 돌보는 간호사가 될게. 고마워. 잘 가. 사랑하는 내 새끼. 창밖에는 어머니 눈물이 빗물이 되어 창을 적셨고, 그렇게 소년이 마지막 보낸 그해 여름은 지긋지긋하던 고열과 통증, 빗물과 함께 끝이 났다.


여름이 두 번 더 지나갔다.

지금 나는 신규간호사의 풋풋함을 조금 벗어난, 5년차 간호사가 되었다. 현재는 부서를 이동해 CCU에서 근무를 하고 있지만, 출▪퇴근 시 외래로 진료를 보러오는 아이들과 부모님을 한 번씩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안타깝게도 그 소년처럼 하늘나라로 간 천사들도 있었고, 지금은 건강해져 머리가 한 뼘은 더 자라나 나보다 먼저 나를 알아봐주는 천사들도 있다. 그곳에 있었던 시간보다 떠나있었던 시간이 더 길다. 그러나 아직도 나를 보면 “쌤!! 지금은 어디 있어요??”, “아이고, 못 본 사이 예뻐졌네.”, “어디로 숨었나 했더니 여기 있었네.”란 다정스런 말들...

 

하루하루가 마지막처럼

즐겁고 행복하게 또한 꿈과 희망이란 끈을 놓지 않고 살아가는 그들에게는 왠지 모를 평온함마저 느껴진다. 오늘도 나는 이들로부터 힘을 얻고서는 중환자실로 향한다. 오늘이 내 삶에 있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힘차게 계단을 올라선다. 정성스레 머리를 만지고, 습도가 높아 눅눅해진 유니폼을 만지작거리며, 준비를 마치니 뜨거운 바닥을 식혀줄 시원한 여름비가 창문 밖으로 어슴푸레 내린다.

 

2년 전 이맘때도 비가 왔었는데...

뜨거웠던 여름, 냉장고를 선물하고 떠났던 그 소년이 갑작스레 보고 싶다.

    

현부야, 편안히 잠들렴.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