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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의 에세이 1
작성자 : 교직원
조회 : 7127
작성일 : 2001-08-24 00:00:00

환자에게 의사는 어떤 존재일까?
입원환자나 수술을 앞둔 환자에게 있어 의사는 구세주와도 같은 존재다.그래서 의사의 말한마디에 환자나 환자 가족들은 일희일비(一喜一悲)한다.
수술실에서 나온 의사가 환자 가족에게 “수술은 성공적입니다.”고 얘기할 때 “의사선생님,고맙습니다.”며 손을 붙들고 코가 땅에 닿을 정도로 인사를 하는가 하면,“최선을 다했지만 결과는 보장할 수 없습니다.”는 말에 땅바닥에 풀썩 주저앉아 통곡을 하는 것도 바로 그런연유다.(물론 요즘은 멱살을 잡히는 경우도 종종 있지만 말이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나약한 환자에게 의사는 가장 큰 버팀목이다.그렇기 때문에 나이가 지긋한 환자라도 손자 뻘 되는 의사를 만나도 “의사선생님 ”이라는 호칭을 사용하는 것 같다.또한 의사가 “이건 해도 되지만,이건 해서는 절대로 안됩니다.”라고 말하면 유치원생들이 선생님 말씀을 듣는 것처럼 “예,알겠습니다.”고 답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누군가를 고통에서 해방시킨다는 것,그 것만큼 보람찬 일은 없을 것이다.“허구한 날 아파서 신음소리 내고 얼굴 찡그리고 있는 사람만 보고 사는데 의사 팔자가 뭐가 좋냐?”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난생 처음 보는 사람의 고통을 해결해 주는 의사는 분명 축복받은 직업임에 틀림이 없다.아마 많은 의사들이 응급환자 때문에 자다가 뛰쳐나오기도 하고 일부는 개인생활을 거의 포기하다시피 하면서도 의사란 직업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도 바로 이런보람이 있기 때문이라 믿는다.
지난해 이맘 때,진료실이라는 좁은 공간을 벗어나 본 적이 없는 의사들에게는 충격과도 같은 시기였다.의료계의 빅뱅이라고 일컬어지는 의약분업을 계기로 터져나온 의료체계의 구조적인 모순을 이제는 바로 잡고자 의사들이 거리로 뛰쳐나갔고 진료 중단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까지 벌어졌다.
의사들이 가운을 벗고 거리로 나서자 사회는 혼란스러워 했다.“자기 밥그릇을 챙기기 위해 어떻게 환자들을 내팽개칠 수 있느냐 ”는 사회적인 분노가 전 국민 사이에 들끓기도 했다.
그때 의사들은 “우리를 돈만 아는 집단으로 매도하지 말라 ”며 사회적 여론의 화살을 언론과 정부에 돌렸다.
의사들은 단순히 의약분업 때문에,약에 대한 마진을 포기하기 싫어서 정부의 의약분업에 반대한 것이 아니라 의약분업의 문제를 계기로 그동안 쌓여만 왔지 도무지 해결되지 않는 왜곡된 우리나라의 의료체계를 바로잡고자 했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정부와의 싸움이 끝나면 의료환경이 많이 좋아질 것이라고 환자와 의사들은 믿었다.의사들의 입장에서는 정부가 약속한 사항들이 지금 지켜지고 있는 것이 하나도 없고 오히려 의사 목조르기를 다시 시작한 상태다.환자들의 입장에서는 파업이 끝나면 최소한 환자를 대하는 의사들의 태도가 조금이라도 개선되기를 바랐다.하지만 달라진 게 별로 없다.
입원환자의 상태가 궁금해 담당의사에게 묻기라도 하면 “치료는 의사들이 알아서 하니 걱정하지말라 "는 식으로 묵살하기 일쑤다.의사의 불친절에 화를 내고 싶기도 하지만 “혹시라도 화를냈다가 가족이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라는 불안감에 화를 참는 사람이 한 두 사람이 아니다.나 역시 파업이 끝나고 진료현장으로 복귀하면서 그동안 의사의 파업으로 고통에 떨며 불안해 했을 환자를 생각하며,앞으로 환자를 대할 때 전과는 다른 반성하는 마음가짐으로 내가족처럼 대하겠다는 다짐을 하고 병원으로 복귀했지만 1년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나를 돌아보면 1년 전에 환자를 대했던 태도가 지금 과연 얼마나 달라졌나 하는 반성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의사도 인간이기에 자신의 몸이 피곤하면 모든 일이 귀찮고 짜증스럽기 마련이고 반복되는 질문을 받거나 충분한 설명과 대답을 했다고 생각되는데도 환자나 보호자가 이해하지 못하고 계속 똑같은 질문을 할 경우에는 퉁명스럽게 말이 튀어나올 수 있겠지만,내 부모 내 형제가 지금 병원에 입원하여 똑같은 취급을 당하고 있다면 얼마나 기분 나쁠까 하는 생각을 해보곤 한다.
나 역시 의대 예과 2학년 재학시절 아버지가 고압전류에 감전되어 심한 화상으로 대구 모 대학병원 성형외과에 3개월 동안 입원하셔서 보호자가 되어보았던 경험이 있기에,지금은 어느 정도 이해가 가긴 하지만 그때 그렇게 퉁명스럽고 불친절하기 그지없던 성형외과 1년차 선생 때문에 무척이나 마음 상해 하시던 내 어머니의 기억을 되살리며,내가 가끔씩 환자나 보호자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행동을 했을 때 내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리며 파업이 끝나고 진료실로 복귀하던 그때 그 심정으로 다시 돌아가자는 다짐을 하곤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