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가 쓰는 병동일지8

작성자 : 교직원  

조회 : 7774 

작성일 : 2001-08-25 00:00:00 


이제 장마가 끝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어떻게 아냐구요? 그냥 날짜 가는 걸로 봐서요. 장마가 끝나고 무더위가 계속되면 8월 한 달을 또 어떻게 보낼까 걱정이 앞섭니다. 휴가라고 있다지만 어디가면 고생 아닙니까? 차에 시달리고 사람들에게 치이고 바가지 요금에... 어디 조용히 쉴만한 데라고 있습니까? 우리나라에? 집이 제일 이라는 결론이 내려지고, 올 여름에도 냉방시설 잘 되어있는 병원에서 열심히 일해 볼 생각입니다. 닥치면 하게 되어있다는 말 아시죠? 전혀 생각지도 않고 있다가 혹은 걱정만 앞서 있다가 막상 닥치면, 어떻게 하든 하게 되는 거 말이에요. 살면서 이 말을 정말 실감했을 때가 딱 3번 있었습니다. 그 첫 번째가 중2 때였는데, 강원도에 사는 사촌오빠 가족이 갑자기 집에 들렀는데 마침 엄마가 없었어요. 아빠는 근처 시장에 가셔서 국거리를 사오시고는 점심준비 하라며 그 국거리를 제게 맡기고 나가시는 게 아니겠어요? 생전 국이라고는 끓여 본 적도 없던 제가 엄마 어깨 너머로 보아온 실력으로 국을 끓여 냈고 결과는 참 잘 끓였다는 칭찬을 들었습니다. 두 번째가 결혼하고 혼자서 밥하고 반찬 만들고 그 많던 집들이를 다 했던 것이고, 마지막으로 세 번째가 바로 7층에서 8층으로 올라와서 꿋꿋이 일 잘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7층, 8층이 무슨 말이냐고요? 7층과 8층은 한 층 차이 일지라도 업무는 완전히 다른 곳입니다. 7층은 외과(신경외과)병동이고 8층은 내과 병동이거든요. 입사해서 신경외과병동에서만 10년을 넘게 버텨오다(?) 내과병동으로 옮겨가게 되었는데, 내과 환자와 내과 업무에 어떻게 적응할까? 내가 과연 내과 간호사로 제대로 일할 수 있을까 내심 걱정이 태산이었지만 막상 부닥치고 보니까 벌써 그게 4개월 전 일이 되었지 뭐예요? 내과병동,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바쁘고 힘든 병동입니다. 환자나 보호자도 꼼꼼하면서 다소 까다롭고, 많이 분주하고, 8시간을 쪼개고 쪼개어 빈틈없이 일해야 하는 병동입니다. 입·퇴원만 해도 많을 때는 하루 10건을 넘고, 또 왠 검사는 그리도 많은지 검사도 간단한 게 아니라 참 해줄 것도 많은 그런 검사들이에요. 근무하는 동안 제 온 기를 다 쏟아 붓고 정신 없이 일하다 퇴근합니다. 작년에 맛들인 취미생활도 8층에 온 뒤론 잠시 접었는데 다시 시작할 엄두가 아직은 나지 않습니다. 말 걸기조차 미안할 정도로 숨이 차 힘들어하는 노인 환자 분들, 그래도 제일 씩씩하게 운동하고 기운차게 다니는 당뇨 환자들, 이러한 환자 분들이 내과병동의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바쁘게 일하다 보니 어느 새 어둠이 내리고 퇴근시간이 다가옵니다. 벌써 자려고 불을 끈 방들도 있고요. 마지막 처치를 다니면서 숨이 차 힘들어하는 할머니가 계신 방에 들어갔습니다. 처치를 마치고 나오는데 할머니가 한 말씀하십니다. "안 그래도 숨이 차 죽겠는데 주사를 한 오봉(쟁반) 갖고 와가 왜 내한테만 다 주고 가노? 그라먼 침대 대가리(머리) 쬐매만 올리주고 나가소." 숨이 차 힘들어하면서도 한 말씀 해 주시는 할머니의 투박한 사투리에 모두들 웃었습니다. 힘든 오늘 하루 그래도 웃음으로 마무리 해준 할머니가 정겹게만 느껴집니다. (81병동 정선아 간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