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가 쓰는 병동일지9

작성자 : 교직원  

조회 : 7794 

작성일 : 2001-08-24 00:00:00 


병원에 근무한지 8년만인 어느날 나는 부서 이동을 하면서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었다. 한 곳에 너무 오래 있었던 탓일까? 마치 울타리 밖 다른 세상을 향해 가는 사람처럼 조금은 설레고 또 조금은 불안한 마음으로 그렇게 새로운 병동에 적응해 나갔다. 이곳은 일반외과!! 일은 힘들고 늘 긴장된 분위기이지만 유독 톤이 높은 목소리들을 가지고 있는 멤버들… 그래서인지 분위기가 마치 '우리 여기에 살아있어요' 하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병실 곳곳엔 이것저것 많은 튜브를 몸에 꽂고 있는 환자 분들의 모습이 우선 마음을 움찔하게 한다. 그들의 고통스러워하는 얼굴과 몸에서 느껴지는 삶에 대한 몸부림이 하루하루 내게는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이 병원 안은 누군가는 삶을 새롭게 얻어가고, 누군가는 안타깝게 잃어버리기도 하는 새로운 시작과 끝이 함께 하는, '희노애락'이 동시에 공존하는 독특한 공간이다. 간혹 환자에게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특히 말기 암 환자들,,, 그들은 실날같은 희망을 품고 하루 하루 살아있다는 확인을 하며 종점을 향해 가고 있는 듯하다. 그러다 갑자기 악화되면 흔히 우리가 하는 말로 'NO CPR' 상황이 되어 임종의 순간을 보호자와 같이 맞이하게 된다. 마지막 그들의 얼굴은 마치 힘든 여행을 접고 가는 사람들처럼 조금은 평화로워 보인다. 그러한 모습을 보며 마음 한 구석 많은 느낌이 다가온다. 결국 우리 모두는 어쩜 이 지구라는 공간에 잠시 여행나온 사람이 아닐까 하는 … 그럼에도 이렇게 아둥바둥 살고 있구나 싶었다. 하루 하루가 마냥 즐거운 사람은 없을 것이다. 더군다나 이렇게 병원이라는 환경에서 근무하다 보면 우울할 때도 많다. 그럴 때마다 병실에서 병마와 싸우는 환자들을 보면서 내가 가진 것, 지금 이 순간 순간의 호흡에 감사한다. 위태위태하던 1인실의 한 아저씨.. 갑작스런 고열과 호흡곤란 등으로 밤 근무 때 수 차례 가슴을 졸였었는데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언제 그랬냐는 듯 반갑게 인사를 한다. "고맙습니다. 매일 의사들 간호사들 애만 먹이지요 … "하며 간호사가 천직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솔직히 몇 번 안 되는 나에게 이런 환자 분의 한 마디는 가슴을 찡하게 한다. 참으로 소중한 감사의 한 마디가 아닐까? 세상 어디에서 이렇게 진실한 감사를 받을 수 있을까? 간혹 화가 나는 경우도 있다. 모두들 급박한 상황 하에서 날카로워진 어조로 한 마디 한 마디 내뱉는 말들이, 간호사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모두 받아들여야만 할 때면 어쩔 수 없이 화를 내기도 한다. 하지만 한 가지만은 분명하리라. 남을 도와줄 수 있다는 것, 내가 내 손으로 행하는 일들이 그들의 병마에 피폐해진 마음에 조금이나마 위로를 줄 수 있다는 것. 아마 이 땅의 모든 간호사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마음이 아닐까? 오늘은 비가 온다. 유비무환 - 비오는 날엔 환자가 없대요? - 이라지만 언제나 거기엔 나를 기다리는 환자 분들이 변함 없이 그 자릴 지키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어느새 나는 병동 여기 저기를 바쁘게 왔다 갔다 할 것이다. 늘- 그랬던 것처럼 … (영남대병원 간호부 122병동 이진주 간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