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잉! 창밖을 스쳐가는 바람소리가 흡사 전설의 고향에 나오는 귀신 울음과 같다는 생각이 들자 몸이 움츠려든다. 에구 추워라 겨울이구나
지난해 이맘때는 41병동 Open후 싫지 않은 분주함에 빠져 쌩쌩부는 바람도 매운 겨울추위도 채 느끼지 못하고 보냈었는데 다시 겨울 어귀에 서 있는 나를 만난다. 벌써 1년이 지났나? 얼마전에는 병동식구들끼리 1주년을 기념하는 조촐한 자리도 가졌었다. 별 탈없이 여기까지 온 것을 감사하면서 그리고 뒤돌아 본다.
1년, 적지 않은 시간이 지난 지금, 내 모습은 어떤가.
Open때 가졌던 마음을 가끔은 잊고 지내기도하고 한 밤에 액션영화의 한 장면을 방불케 하는 환자들의 지나친 몸부림(?)에 마음을 상하기도 하고 어떤 땐 작은 일에도 무척이나 고마워하는 환자들에게서 오히려 내가 더 감격해하기도 하고 반복되는 일상의 나른함을 느끼기도 한다. 또 가끔씩은 이런 것들 속에서 허우적대며 살고 있는 내가 참으로 싫다는 생각도 한다. 그래서 생활의 활력소가 될 획기적인 그 무언가를 찾아보지만 내가 찾는 것은 보이지않고 나는 또다시 언제나 내가있던 곳. 일상속으로 되돌아온다.
81병상의 넓은 병동 민트 그린색의 아늑한 분위기 하지만 병동은 밤이 오기 전까지는 시끄러움이 가시지 않는다. 서로 이야기를 하는건지, 싸움을 하는 건지 공중전화에다 대고 소리소리 지르는 사람, 고통을 견디는 신음소리 빨리 봐주지 않는다고 소리치는 사람 심지어 술먹고 면회온 보호자들의 고함소리까지 이 모든 것들은 병동이 어둠에 잠길 무렵이 되어서야 사그러든다. 거기에다 저마다 도움을 청하는 보따리를 안고 간호사실이 마르고 닮도록 찾아오는 환자, 보호자들……
한번 두 번… 대답하고 설명하는 것에 지쳐 짜증이 난다. 고개들고 얼굴을 마주 할 기운도 없다. 목구멍까지 가득 차 오르는 짜증스러움. 내 인내력의 한계를 느끼는 순간이다.
으∼으! 비명이 터질 것 같다. 하지만, 꿀꺽! 삼키고 만다. 그래 삼키자.
내가 간호사이므로 그들은 내게 당연한 것들을 물어오고 요구하고 있는 것을 너무나 당연한 일인 것을 난 왜 자꾸만 잊어버리는 걸까?
더러는 억지를 부리거나 지나친 요구를 하는 경우도 있지만 내가 그들의 입장이라면 난 오히려 더하지 않을까. 그래, 내 손길을 기다리는 그들의 선한 눈망울을 모른 척 해서는 안될 일이다. 내가 지금 그들을 위하여 해줄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그들과 나눌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따뜻한 마음 한 자락, 먼지 한 줌이라도, 그 작은 나눔이 그들의 아픔을 치유하는데 도움이 된다면 그렇게 해야하지 않을까 싶다.
그래 지금 내 깨달음이 늦지 않았다면 지금껏 쌓인 내 생활의 찌들은 때를 깨끗이 빨아널고, 보송보송하고 향기로운 새 기분으로 나의 환자들 앞에 서야겠다.
창문 흔들리는 소리는 점차 크게 들리고 겨울은 성큼 다가오나 보다 세상은 요즘 온통 썰렁썰렁 뒤숭숭하기만하다. 썰렁하고 추운 겨울을 맞으며, 아픔과 싸우는 환자들의 신음 소리를 조금이라도 덜어줄수 있도록 하기위해 또한 그들의 따뜻한 겨울을 바라며 오늘도 나는 새롭게 마음을 단정히 묶는다.
●영천영대병원 41병동 이은경 간호사 ●(영남일보 12/5자)